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 1212-50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에서 마리아를 통해 향유 부음을 입은 다음날에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환호했습니다. 이 때 헬라사람 몇이 빌립에게 와서 예수님을 뵙고자 부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시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시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임금이 쫓겨나리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성취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은 어둠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부터 이 때를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은 아직 되지 않았다고 하시며 당신께서 행하실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시고 당신이 메시야 되심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알리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때에 대해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본문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는데 있어서 먼저 겸손히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12절부터 15절까지 읽겠습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듣고 맞으러 나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종려나무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외친 것은 그들이 초막절에 외쳤던 외침인데 이는 건기의 마지막 때에 버드나무가지를 꺾어 제단에 놓고 실로암에서 떠온 물을 부으며 비를 주셔서 메마름에서 건져달라고 하며 외쳤던 말이 호산나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외침을 지금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로 인식하고 영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타신 짐승은 나귀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스가랴서 99절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메시야가 어린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와 겸손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당시 왕은 노새를 탔고 장군을 말을 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처럼 군림하거나 착취하는 왕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며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어 우리를 구원할 자이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시온 딸이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다시 교회를 상징하는 말로 외부적인 공격과 박해가 교회에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겸손과 평안으로 임하셔서 평화의 통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이 글을 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외부적 박해와 사탄의 손안에 있었던 황제와 그를 따르는 거짓선지자들의 통치로 인해 위축되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요한은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우리가운데 임하신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메시야의 영광을 얻으실 것을 예표 하는 행동 설교였습니다. 그가 장차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므로 만민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을 예표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바리새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예언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본문 19절에 말하기를 서로 말하기를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사람들 뿐 아니라 제자들도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스가랴서 99절의 예언의 말씀과 예수님을 연관 지어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 입장에서는 기괴한 행동을 하시는 주님의 모습에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왕으로 입성하시는 분으로서 나귀를 타시는 것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새끼나귀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얻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겸손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주심으로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절과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헬라에서 온 사람들 몇이 빌립에게 찾아와서 예수님을 뵙기를 청했습니다. 이에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님께 가서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읽은 대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하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며 그 방법으로 죽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당신은 한 알의 밀로 비유하셔서 자신이 죽으면 그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죽음이 이사야서 53장의 메시야 예언 중의 한 절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사야서 5310절에의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성경은 좀 더 쉽게 번역했습니다. 번역하기를 그러나 그가 고난을 당하고 상한 몸으로 죽게 된 것은 여호와의 선하신 뜻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범죄하고 죽어야만 했을 때 그가 대신 자기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끝없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그가 고난을 당하고 죽음으로 여호와의 선하신 뜻이 성취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죽어야 할 존재로 이 땅에 오셨고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 지금 입성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헬라인들이 만나고 싶다는 부탁에 당신의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헬라인들과 제자들에게 25절과 2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5절과 2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심은 당신이 영광을 받는 방법이 죽음인 것처럼 당신을 따르길 원하는 자들도 한 알의 밀알로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도 아버지께서 고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 그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고

 

베드로도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벧전2:18)라고 했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벧전3:13)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삶과 모든 것을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무능력해 진 것은 복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복음이 말씀하고 있는 요구를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요구는 죽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을 대하여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죽고, 명예에 죽고, 쾌락에 죽고, 세상이 복이라고 인정하는 것에서 죽어야 하는데 교회를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죽으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며 살까를 생각하니 진정성 있는 성도의 삶은 없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은 주를 위해 죽는 자입니다. 그런 자를 통해 이 땅에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나아가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을 통해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절과 3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얻어지는 승리는 먼저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로마의 황제나 헤롯이 아니었습니다. 그 임금은 세상을 주관하는 마귀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4절부터 16절에서 말씀하기를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33절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승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승리는 세속적인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1차 수신자였던 초대교회 성도들도 로마정권으로부터 수많은 박해를 당했지만 단 한 번도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세속적인 힘으로 그들을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검투장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상대보다 강했음에도 상대의 칼에 맞서 싸우지 않았고 그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죽음의 세월이 300년을 지난 후에 로마는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으심으로 얻은 승리의 두 번째 현상은 모든 사람이 주께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예수님께 모든 사람이 오게 되는 이유로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 들린다는 것은 이미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는 나무에 달린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놋뱀이 백성들을 물어 그들에게 사망을 주었지만 그것이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해 나무에 달린 것을 바라보고 믿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사망이 끝나고 생명을 얻을 것을 의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죽었던 것인데 그 죄를 주님께서 짊어지시고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을 믿으면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나무에 달림, 즉 땅에서 들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탄은 죽임을 당하고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들도 주님께 나아가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이 일로 인해 우리에게 미친 은혜, 즉 예수님의 영광을 받으신 목적은 당신의 백성을 영광스럽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44절과 4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먼저 당신과 하나님의 일체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당신을 보는 자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예수님과 황제 사이에서 참 신이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요한복음서를 기록했는데 본문이 바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쓰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예수님을 믿으라고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6절과 4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한은 요한복음서를 시작 할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에 대해 말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13)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오신 이유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려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구원해 주심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돈이 많아져도, 권세가 높아져도 힘이 세고 인기가 많아져도 그것은 근본적인 영광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우리는 요즘 유병언과 그가 다른 사람의 피를 거름삼고 악을 모종삼아 이룩한 썩어질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가 이룩한 영광의 최후는 먹다 남은 육포와 산에 흐르는 물을 담아먹기 위해 주운 막걸리 병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수많은 인생들이 그 영광을 추구하며 오늘도 달리고 있습니다. 더욱 불쌍한 것은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며 어리석은 영광놀이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러한 사람들의 가장 큰 불행이요 저주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라지는 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영광이지만 주님께서 당신이 흘린 피의 대가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사야서 6019절과 20절은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당신께서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이미 보았듯이 당신께서 죽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당신이 영광스럽게 되었는데 그 영광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으로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월을 허비하며 주어진 은사를 땅에 묻고 썩어질 것에 목숨을 걸고 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의 나라의 회복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여 세월을 사고, 많이 맡긴 자에게 많이 찾으시는 이이신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이익을 남기며, 이 땅에 썩어질 것을 투자해 하늘에 사라지지 않는 보화를 쌓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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