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

데살로니가전서 39-13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3장을 통해서 성도는 성도를 위해 존재함을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성도는 성도의 신앙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고 둘째 시간에는 성도는 성도의 성장으로 위로받는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성도는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바울일행은 데살로니가교인들로 인해 모든 기쁨으로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 보았던 것처럼 바울의 기쁨, 바울의 위로가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랑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를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교인들을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첫 절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통한 바울의 기쁨과 그 기쁨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감사할까

 

바울이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통해 기뻐함이 진심임이 본문에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기쁨으로 기뻐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치 엄마가 품속의 아기를 보며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시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사랑했다고 하셨고 무화과 첫 열매를 봄같이 사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9:10). 그들을 자신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셨고 그들을 징계하실 때도 아드마같이 스보임같이 대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11:8). 이 표현들을 풀어 말씀드리면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라는 표현은 광야에서 더위와 배고품으로 허덕일 때 신선하고 맛있는 포도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는 표현이고 무화과 첫 열매를 봄같이 사랑했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겨울에 과일을 못 먹다가 겨울이 지나고 첫 번째로 맺히는 무화과 열매를 대하는 것처럼 사랑했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징계 중에도 그들을 아주 버릴 수 없다는 표현이 아드마같이 스보임같이 대할 수 없다는 표현인데 이는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 받을 때 함께 멸망한 성읍의 이름인데 이처럼 아주 버릴 수 없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결실이 아들을 내어주심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후에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여인의 후손을 통해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담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이나 아브라함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이나 패역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종종 성도들이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는 아마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하게 살 때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의 생각이 그럴 뿐입니다. 탕자를 사랑하신 아버지는 그가 그의 품에 있을 때나 떠났을 때나 동일하게 사랑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교인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러한 바울의 고민은 곧 이어지는 절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데살로니가교인들에 대한 최대한 사랑의 표현은 기도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에 대해 데살로니가교인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충하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그럴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도 기도에 게을러질 때마다 제 자신에게 성도들은 목회자의 기도로 산다라고 채찍질합니다. 성도에게 문제가 생기고 신앙이 바르지 못하면 그것이 전부 제가 기도하지 못해서 빚어진 결과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죄송합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기도를 통해 영혼들을 돌보았습니다. 특히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바울은 중보기도의 대표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밑에서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할 때 하나님의 진노를 모세의 중보기도로 막아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구하고 그를 의지했을 때 사무엘선지자는 그들을 책망하면서 동시에 말하기를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고 실제로 그는 평생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바울도 로마서에서 자신이 생명책에서 끊어질지라도 히브리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도 성도들도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의 부족을 기도로 보충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무엘은 중보기도를 쉬는 것을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는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고 잡히시기 전날 밤에는 제자들을 위해 대제사장적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며 우리의 심령에서 성령을 통해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살고 살리는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어지는 글 속에서 자신의 기도 제목을 언급합니다.

먼저는 자신을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보내달라고 기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바울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그들에게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그들의 신앙 때문입니다. 환란 속에서 신앙생활 해야 할 데살로니가교인들을 격려하고 말씀을 더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모든 교회는 다 사랑스럽고 또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그 중에서 특별히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는 교회였습니다.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더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 더 아픈 손가락이 데살로니가교회였습니다.

 

그러기에 그곳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목회자들도 그렇습니다. 이미 서있는 성도, 잘 하고 있는 성도보다 영적으로 아프고 어린 성도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서면 또 다른 성도에게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그것은 편애가 아니라 안타까움입니다.

 

인간도 그러한데 주님은 어떨까요? 주님도 아직 어리고 부족한 성도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목자가 울타리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어깨에 메고 오는 모습을 통해 목자 되신 자신이 잃어버린 양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음을 표현하셨고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병든 자와 잃어버린 자를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들도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 방황하는 영혼, 아직 어리고 연약한 연혼을 향한 사랑으로 관심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누가 연약하고 병든 양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적인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신앙적인 판단에 근거해야 합니다. 재물이 적고 건강을 잃은 사람이 연약한 양이나 병든 양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결핍으로 인해 그 영혼은 더 건강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하고 건강하다고 건강한 영혼을 소유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비례하거나 반비례하지 않습니다. 그 영혼의 상태는 그 모든 것의 결핍이나 풍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추어보아 알 수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모든 영혼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해도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신앙의 성장속도와 정도가 다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시고 정죄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을 각각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성장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판단이나 기준으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 주변의 성도들을 우리도 용납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땅히 할 바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어서 기도하기를 성도 간의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바울의 두 번째 기도제목은 성도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자신을 용납해 주는 사랑,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자원하는 사랑,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랑, 형제와 자매의 삶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함께 고민하여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함께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세상은 오지랖이 넓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직하지 않은 오지랖의 모습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은 정죄입니다. 죄를 지적하고 정죄하기에 빠른 공동체입니다. 오지랖이 넓긴 한데 온통 주변의 연약에 관여하여 정죄하고 뒷말하고 다니는 오지랖입니다. 이는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으로 형제와 자매의 실수와 죄를 끌어안고 아파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모습입니다.

 

바울이 원하는 모습,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본문의 말씀처럼 서로사랑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 사랑의 예를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와 사랑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번 말씀 드리지만 죽기까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합시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허물과 죄를 다 사하시고 지금도 여전히 용납하시며 변함없이 사랑하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와 함께하는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기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더불어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굳은 마음입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2절 후반절과 13절 전반절을 보면 사랑이 더욱 많이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더욱 많이 넘치게 되면 그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마음이 굳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형제들의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는 말하기를 믿음은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처럼 형제를 사랑할 때 상대는 그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 중에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함께 해 주는 믿음의 동료가 있고 사랑의 격려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49절로 12절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도 죽음을 앞둔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사랑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평안 할 때 자신혼자 신앙생활 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성도의 무리에서 떠난 자는 사자가 무리에서 떠난 사슴을 사냥하듯 사탄의 표적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사랑의 교제를 귀하게 여기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신의 신앙을 굳게 하고 환란의 때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기도제목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끝가지 믿음을 지키며 인내해야 합니다. 종종 신앙생활 하던 분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말을 듣게 되고 심지어는 죽기 전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었다는 예기를 듣게 됩니다.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떤 이는 평생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죽기 얼마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백성이 되는 이도 있는데 그들과 비교하면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인내가 아주 중요합니다.

믿음과 인내는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책망하실 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시며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찾아 돌이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하면서 요한계시록 1412절과 13절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도에게 인내가 필요한데 심지어는 죽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이 날로 더해가고 성도를 향한 세상의 핍박이 더 심해져도 믿음을 잃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포도나무 비유(15)를 통해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신 것처럼 저들의 생명도 지켜달라(17)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제목을 기억하십니다. 그것은 성도는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우리 서로를 지키고 바로 세우며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무엘선지자처럼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는 일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힘을 다해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 형제들의 신앙의 파수꾼이 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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