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를 존중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2-13

 

얼마 전 신문에 소망교회 김지철목사가 한 말이 실렸습니다. 그는 74일 경주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전국장로수련회에서 "목회자들은 장로의 비판적인 질문을 막고 성도들의 질문을 막으면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우민정책을 썼다. 이는 한국교회의 성장처럼 보였지만 지금 한계에 부딪히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를 비지성주의, 무비판주의로 만들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도를 우민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교회는 목사를 손에 쥐고 흔들어 목회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픔입니다. 한국교회의 아픔, 하나님 나라의 아픔입니다. 그 어떤 것도 바르지 않습니다. 성도를 우민화하는 것도 바르지 않고 목회자가 소신 것 할 수 없도록 쥐고 흔드는 것도 바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역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역자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봅시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바울은 사역자들에 대해 세 가지로 정의 합니다.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씩 생각해 봅시다.

 

먼저 사역자는 수고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수고하는 자입니까? 그것은 말씀을 먹이고 말씀대로 성도를 살게 하기 위해 수고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초대교회가 생겼을 때 교회는 급속하게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 교회는 분주했고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 일에 사도들도 성도들도 모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도들은 자신들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인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제와 봉사의 일을 위해 일곱 명의 집사를 뽑아 세우고 자신들은 말씀 증거와 기도에 힘을 다했습니다.

 

사역자들이 수고해야 할 부분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것으로 영혼들을 먹이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는 힘을 잃기 시작했고 사역자들은 생활을 이유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영혼들에게 먹일 양식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캐나다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종종 전화를 받습니다. 이민교회가 대부분 그렇듯이 2-30명의 성도가 현지교회의 비는 시간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헌금수입은 교회를 운영하는데 모두 들어가고 자신들은 생활이 안 되기에 부부가 모두 일을 합니다. 그 친구의 고백은 주중에 일하고 주일에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목회의 전부인지라 성도를 제대로 양육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답니다. 그는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내가 목회자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힘들어하는 것을 봅니다. 그에게 용기를 내어 죽기 살기로 목회에만 힘을 쓰라고 종종 말하지만 힘도 되어주지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역자가 수고해야 할 일이 말씀을 먹여 영혼을 양육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역자는 수고하는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수고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코피아노입니다. 이는 수고한다는 말과 함께 피곤하다, 열심히 일하다, 지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코피아노라는 말은 지쳐 피곤할 정도로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가르치면서 많은 사역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든, 기도에 힘을 쓰든, 전도에 힘을 쓰든,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대로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주저앉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실 때만 바라고 있지 말고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힘을 다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기회가 되면 하겠답니다. 어떤 이는 사역을 맡겨주시면 힘을 다하겠답니다. 또 어떤 이는 닥치면 다 열심히 하게 된답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영혼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사역자의 수고는 분명한 것입니다. 말씀증거와 성도 양육입니다. 그것에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즘 사역이 다양화되어 사회봉사, 구제, 복지 등의 여러 가지 사역이 있지만 그 어떤 사역이든 말씀과 함께 해야 하며 피곤하여 지칠 정도로 힘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역자는 주안에서 성도를 다스리는 자입니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다스린다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다스리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히스테미라는 말입니다. 이는 앞에라는 뜻의 프로세우다라는 뜻의 히스테미가 합성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직역하면 앞에 세우다라는 말이 되는데 이에 근거하여 다스리다, 보호하다, 돌보다, 돕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억압하고 통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어사전에서도 다스린다는 말은 보살펴 이끌거나 관리하다라고 했는데 사역자들은 성도를 주님의 말씀 안에서 보살피고 돕고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삶은 말씀으로 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성도를 다스리는 것은 단어의 뜻대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는 사역자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은 자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저는 싫은 소리를 잘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강좌하면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도를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건 우리 사역자 자신들을 향한 말씀이건 가감 없이 전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선지서를 강해하다보면 그 모든 말씀이 저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에스겔서 131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고 말씀하시면 거짓선지자를 책망하셨습니다. 같은 장 19절에서도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고 엉덩이 두들겨 주면서 괜찮다고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말하여 그들로 죄를 깨닫지 못하게 했기에 그들이 결국은 망하게 되는데 그 책임이 말씀을 맡은 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다스림에 성도들도 함께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사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부르신 하나님은 너희가 말씀을 전하나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보내셨기에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은 알지만 우리 성도들을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모두가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먹으라고 권했고 선지자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길 원했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데로 선지자도 살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모스의 책망을 듣지 않은 그들은 말씀을 듣고 2년 후에 대지진으로 고통을 당했고 얼마 후에 앗수르에게 의해 완전히 망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힘이 들어도 말씀으로 성도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워야 하며 성도는 그 말씀을 들을 때 아프고 기분이 상해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듣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사역자는 성도를 권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권하다는 말하는 앞에 다스리다는 말과 의도가 통하는 말입니다. “권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누데테오라는 말인데 이는 경고하다, 충고하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충고하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책망이 있다고 경고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을 구약에서는 나팔수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나팔수로 삼으셨다고 하고 계시며 그 나팔수들이 나팔을 불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하기를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 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33:2-9)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말씀을 받은 자들은 전해야 하며 그들이 전하지 않으면 듣지 못한 자들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했고 반대로 전한 자는 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나팔수는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죽은 자의 생명을 그에게서 찾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맡은 자는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경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하나님의 일꾼인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으로 사역자가 말씀을 선포할 때 그것이 비록 쓰고 아파도 아멘으로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듯이 생명의 말씀은 때로 우리에게 아프고 괴롭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주의 말씀으로 권함을 받기에 겸손한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사역자의 사역을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놓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들을 너희가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사역자를 알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이도라고 합니다. 이는 보다, 알다, 경험하다라는 뜻인데 이 말은 히브리어투로 이해하면 “~을 존경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라고 이해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알라고 한 말씀을 히브리어투로 번역하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존중하고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성경은 이 부분을 존경하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들을 존중히 여겨 주셔야합니다. 지난주에 신대원생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한 전도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교회에서 전도사들을 대하는 자세가 마치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같이 있던 전도사님들이 모두 그렇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존중함이 없는 사람에게서 무슨 영적 유익을 얻을까요? 자신들이 월급을 주는 사람정도로 여긴다면 그에게 어떤 영적인 권면이나 지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아무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사역자가 나이가 많건 적건, 그가 학벌이 좋건 그렇지 못하건, 그가 호감이 있게 생겼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역자는 사역자로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유익합니다.

 

그가 만약 존중받지 못할 짓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가 절차를 걸쳐 결정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그를 존중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종종 성도들이 집에서 사역자와 동료 성도들을 욕하는 경우를 봅니다.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해롭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사역자와 어른 성도들을 존중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들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아이들이 대통령이나 학교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언행을 했을 때는 바르게 지도해 주셔야 합니다. 어른을 존중하지 않는 아이들은 바르게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역자들을 존중해 주십시오. 가난하고 힘이 없어 보여도 그들을 통해 영적인 양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존중해 주신다면 본인에게 유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존중하라고 하면서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다시 한 번 더 존중할 것을 말씀합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이 부분을 표준새번역은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사역자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해 주고 존경해 주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들을 존경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직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 그것은 이미 말씀드린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17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에게 사역자들이 하는 일과 그에 합당하게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록되기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문제가 있으면 사역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며 기도합니다. 성도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면 자신이 기도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이 여깁니다. 성도가 범죄 하여 어려움을 겪으면 사역자는 자신이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여겨 회개합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사역자가 그렇게 하면서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는 것은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를 위해 진정으로 대하며 진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인도에 순종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나아가 본문은 사랑하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6절에서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41절에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여 사역자들을 섬긴 것은 그들과 함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열왕기하에 보면 엘리사와 수넴 여인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사역을 적극 도왔으며 그 결과 그 집에 아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은 결론 맺기를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사역자를 대하여는 존중하고 성도들끼리는 서로 화목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편을 가르며 판단하고 정죄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개교회 안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한 말씀입니다.

 

서도 화목해야 합니다. 자신과 같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형제로 여기고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추라고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한 곳을 향하고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서 2장에서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기록되기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11)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역자는 힘을 다하여 지칠 정도로 주의 일에 힘을 다하고 성도는 사역자들이 기쁨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존중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시오. 나아가 서로 화목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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