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누가복음 22:54~62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걷고 있을 때 공항 홀을 뛰어가는 사람이 쓴 모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모자에 쓰인 두 단어, "무엇이든 부인하라" 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잘못을 절대 시인하지 말라는 뜻일까? 아니면 인생의 즐거움과 사치를 부인하라는 뜻일까? 나는 그 간결한 두 단어, "무엇이든 부인하라" 라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도 일종의 부인을 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 그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눅 22:57, 58, 60). 그는 겁에 질려 부인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아픈 마음 때문에, 영적 패배감으로 무너진 채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씁니다(62절).
그러나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부인했던 순간들처럼,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가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라고 기술했습니다. 우리가 실패할지라도,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이 결코 쇠하지 않는 인자와 긍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롭고 무궁하신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한 것을 용서해 주시고,
나를 가르치셔서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께 달려갈 수 있게 하소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 예레미야애가 3:22~23
*본 내용은 한국오늘의양식사에서 발행한「오늘의 양식」을 참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