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 5

 

아무나 해병대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의 자부심이라 여겨집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나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해병대는 자신의 선택과 능력으로 결정된다면 믿음은 부르신 이의 전적인 선택과 능력으로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믿음이 어떻게 주어졌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끝으로라는 말로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자 함입니다. 그 말들 중에 첫 번째가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자신들의 복음전파를 위한 내용을 먼저 부탁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바울은 자신의 복음전파를 위해 그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복음은 인간의 지혜나 재주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나와 베뢰아를 거쳐 아테네에 왔을 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지식과 논리력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아테네에는 아테나여신을 주신으로 섬겼던 파르테논신전과 그 주변에 여러 부속신전들과 비석들을 통해 신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그 신들 사이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글귀가 기록되어 있는 비석을 보고 그것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고린도에 왔으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지만 두려움으로 어찌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성에는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는 말씀을 듣고 나가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 전파는 인간의 지혜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그 첫째로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복음전도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목사와 선교사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과 그 일의 성취를 위해 날마다 때마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둘째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 방법이 복음전파입니다. 그리고 성도와의 관계와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도 복음이고 끝도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전파를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 이 기도 제목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중에도 자신을 위해 부탁하는 기도제목 중에 이 기도제목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619절과 20절에서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고

 

골로새서 43절에서도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역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혈과 육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가 성전재건에 대해 말할 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고 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을 때 주님은 그것이 베드로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기도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그 결과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복음의 전파를 묘사하는 말로 퍼져나가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트레코라는 단어인데 이는 빨리 달린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은 이 부분을 달음질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의 긴급함을 이 단어를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이런 가치관으로 인해 30여 년의 사역을 통해 지중해권 전체가 복음의 영향력아래 있게 된 것이고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두 그 일에 헌신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저자인 바울도 그러했고 디모데도, 누가도, 아볼로도 모두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세월을 아껴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수고하는 사역자들을 위해 힘을 다해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엨사고라조마이”, “아끼다”, 대가를 지불하여 사서 얻으라는 의미의 이 단어처럼 우리가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전파 때문인 줄 아시고 힘을 다해 이 일에 헌신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제목도 복음전파와 관계됩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바울이 부탁한 두 번째 기도 제목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당할 어려움으로부터 주께서 건져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데살로니가교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 안에 있을 때도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3주밖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도피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복음은 전하다가 연약한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유대인의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며 온갖 고난을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바울이 예루살렘과 로마에서 각 2년의 옥고와 유라굴로 광풍으로 당한 고난과 네로의 박해로 로마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 당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져주시는 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기도 제목을 내 놓은 것에 대해 오해하면 안 됩니다. 바울이 박해 자체를 무서워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일로 인해 복음 전파에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갈 때 에베소교회 장로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 자신이 가면 잡히고 목숨의 위협을 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백하기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3-24)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에 방해가 없다면 아니 복음만 전파된다면 어떤 고난도 감당할 용의가 있고 도리어 기뻐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그 일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기뻐한다고 했을까요?

 

그러므로 바울의 두 번째 기도제목은 육체의 안락한 삶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이 빨리 전파되어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 그것들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하는 말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복음전파 시에 박해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모두가 믿는 사람이라면 두 번째 기도제목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또한 능력있는 전도자가 전하면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 믿을 것처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복음 전도를 통해 3000명이 돌아오고 때로는 복음 전파로 인해 돌이 날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극단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감사해야하며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되 그 결과를 주께 맡기며 힘을 다한 것으로 족해야 합니다. 아니 복음 전파로 인해 환란과 핍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이 복음을 통해 믿음이 생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에게 믿어진 후의 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이 말씀은 앞 구절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한 말씀에서 믿음이 없는 바울의 대적들과 대조적으로 주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묘사입니다. 바울은 주님에 대해 미쁘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말입니다.

 

왜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믿음을 얻은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빌립보서 18절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은 주님의 지켜주심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히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역사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았듯이 지켜주심도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구원의 역사에 우리의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전적인 주의 은혜로 구원은 시작되었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단지 행위는 그 은혜에 감사하여 기꺼이 행할 뿐입니다.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 하거나 하나님이 두려워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행위는 그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우러나오는 행위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는 절대로 취소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31절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요한복음 1711절과 12절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835절부터 39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에게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지키심이 있음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4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바울은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지키심이 있음을 말하면서 성도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 확신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은혜에 감사하여 기꺼이 말씀대로 사는 자가 될 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지켜 살 때 그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적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부부 관계에 비유하여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초보적 신앙인은 주인과 종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워하는 관계입니다. 안하면 징계가 있을까 두려워서 행하는 관계입니다.

다음 단계가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보다는 발전했지만 아버지를 사랑하여 행하기보다는 자녀이기에 행하는 단계입니다. 잘못하는 것이 많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줄을 믿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가장 성숙한 관계는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입니다. 사랑하기에 행하고 사랑하기에 절제하는 단계입니다.

 

성도는 제일 마지막 단계의 사랑의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기쁘고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제 바울은 모든 믿는 자들의 궁극의 목적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완성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의 사도적 가르침을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 행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지 아니하고서는 그 가르침을 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마음을 인도하여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인도한다고 할 때 인도한다는 말은 헬라어 '카튜뒤나이'입니다. 이는 미래 능동 희구법으로서 장래에 대한 강한 소원을 나타냅니다. 이것의 원래 뜻은 길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해 버리고 '직행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믿는 자들의 앞길에 믿음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주시고 궁극적인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삶에 장애물을 없앤다는 것이 아무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게 한다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삶에 어려움과 문제가 있어 우리의 구원의 길을 막는 세속의 온갖 유혹과 죄악들을 이기는 힘이 되게 하여 그것을 없애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찬양의 가사도 말하기를 이 풍랑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인도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디아스' 속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바울은 주님만이 사람들의 속사람을 주장하시며 변화시키는 분임을 믿고 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인도하시면서 이끄시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두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사랑과 인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인데 인내 가운데 있어야 한다? 이 두 말은 육신의 눈으로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의 삶이 무엇이냐?’는 것에 진지한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말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이 땅의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육체가 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성장에 가치를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요구에 굴복하는 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는 버림받아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란 빌립보서의 말씀처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2:6-8)까지입니다.

 

히브리서는 그가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갔기에 우리도 그렇게 까지 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도의 인내의 한계는 죽기까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고 은혜입니다. 그리기에 이 시대 복음 전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을 통해 믿음을 얻은 우리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즉 구원의 날가지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기도하기는 그날까지 더 믿음이 깊어지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까지 들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http://youtu.be/RTff-gRaJ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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