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회복
창세기 16장 16절과 17장 1절의 사이에는 13년 이라는 긴 세월이 있다. 이 기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단절한 시간들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의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여 적용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고의적인 실수로 인해 빚어진 결과였다.
“단절”
이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아니 경험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단절, 평생을 믿고 따랐던 누군가로부터의 단절, 그것은 고통이고 나아가 죽음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절을 당한 사람뿐 아니라 단절을 한 쪽에서도 고통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아들과 어떤 이유에서건 단절한다면 그 아버지도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 그와 교제하시며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정녕 죽으리라”던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는데 그것은 “단절”이라고 하는 죽음이다. 이 사건은 아담도 고통이었지만 하나님도 고통이셨다.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도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도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위해 오랜 세월 준비하시고 사랑하셨던 아브라함과의 단절이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신약을 사는 우리들에게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 속에 거하시면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이 하나님과 교통의 단절을 초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목회를 하면서 듣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요즘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 같지 않아요.” “요즘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지 않고 멀리 계신 것 같아요.” 등이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로 인해 우리 안에서 침묵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한이 없고, 사랑이 많은 분이시라 반드시 하나님 편에서 회복의 길을 열어주신다. 오늘도 보라 단절의 회복을 위해 아브라함은 한 것이 없다. 단지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회복을 선포하며 그 회복에 필요한 요구를 하고 계시지 않는가?
우리가 잘 아는 성탄절,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단절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날을 감사하며 축하하고 기념하는 절기인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범죄한 자를 용서하시고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상처를 싸매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세기 16장 16절부터 17장 1절까지)
하림교회 황목사
좋은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