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23-40

 

빌라도가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심으로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셨고 그곳에서 주님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 가지는 사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며 요한을 아들이라고 하시며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고 하여 모자관계로 엮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은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말씀을 하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이날은 안식일 전날이었고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기에 십자가에 시체를 메달아 둘 수 없었습니다. 이에 군병들은 예수님 양편의 죄수들은 정강이를 부러뜨려 죽였고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기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요청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23절과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사등분하여 나누어 가졌고 속옷은 나눌 수 없는 통으로 짠 것이기에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옷을 찢어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편 2218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그 시에서도 시인은 대적들의 공격으로 인해 극심한 고난과 수치를 겪으면서 고백했는데 그 고통의 절정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아 가졌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받으신 수치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치는 저와 여러분이 당하여야 할 수치였습니다. 최초의 아담이 범죄하고 수치스러워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을 때 죄지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죽옷을 해 입히심으로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신 주님의 은혜는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 속에서 속옷까지 벗김을 당하여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보혈의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져야 할 수치를 대신 당하시고 우리에게는 당신의 죽으심으로 얻으신 의의 옷을 입혀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수치를 대신 당하신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를 하시며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1언의 말씀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23:34)

2언의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3언의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19:26-27)

4언의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언의 말씀 : "내가 목마르다!"(19:28)

6언의 말씀 : "다 이루었다!"(19:30)

7언의 말씀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

 

그 중에 세 개의 말씀이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5"내가 목마르다!", 그리고 6"다 이루었다!"입니다.

 

먼저 3언 말씀인 26절과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곱 마디 중에 첫 번째의 것으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과의 새로운 모자관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이 말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는 자리에 간 자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요한만이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시는 자리, 십자가 지시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요한은 예수님 앞에 있었는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와 자신을 모자 관계로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3절을 보면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그 누이들이라고 해서 형제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초대교회가 성장하면서 예수님의 동생들이 사도 요한보다 먼저 순교하거나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리아를 끝까지 모시고 다닙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에베소가 박해로 인해 지도자들의 공백이 생겼을 때 에베소로 들어가면서 마리아를 모시고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한은 이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다른 제자들을 기억하지 않는 십자가 상에서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5언과 6언을 보겠습니다. 28절부터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한 예언을 이루기 위해 목 마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것은 시편 6921절의 말씀인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목 마르다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의 표적과 관련된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첫 번째 표적을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집에서 행하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자리를 풍성케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표적을 포도주로 행하신 주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가나에서의 첫 번째 표적이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고 만찬석상의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이 마심과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받으심은 성도들과의 혼인 약속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셔야 할 성도를 구원할 일을 가나의 포도주 사건을 통해서 처음으로 드러나고, 십자가 사건의 포도주와 더불어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상에서 6언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자 하신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에게 주어진 구원이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1%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로 우리의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구원을 위해 공로나 행위를 말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21절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 지구 위에 살았던 모든 사람,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은 오시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온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기에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10절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고 있고 20절에서는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했으며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죽어주셨기에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죽으신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3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찾아가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다리를 꺾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달려서도 3-4일을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강제로 죽여 달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강제로 죽여 달라고 한 이유는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안식일에는 시체를 십자가에 달아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군병들은 양편의 죄인들은 다리를 꺾어 죽이고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기에 죽음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창에 옆구리를 찔리신 주님의 몸에서는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이것은 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피와 물육과 영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와 물의 쏟아짐은 예수님의 영의 건네줌과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말씀으로서 육신이 되셨으며(1:14), 그 영은 예수님 위에 머무셨고(1:32-33), 이 육과 영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피와 물로 상징되어 말씀되고 있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증언하기를 그 영은 예수님 위에 머물렀다고 하였는데(1:32, 33),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바로 그 영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닙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3:5-6).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내려 머물렀던 그 영, 운명하시면서 하나님에게 돌려주신 후 그 영은 성령으로서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결국, 흘러내리는 피와 물은 가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항아리와 같이, 자신을 완전히 비운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주며, 새로운 포도주를 제공해 주는 근원으로서의 주님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과 피를 다 쏟아주심으로 생명을 주셨고 그것으로 다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옆구리가 찔린 것은 다른 의미로 옆구리가 열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의 옆구리를 열어 하와를 지으신 하나님은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부터 그분의 신부인 교회 즉, 성도들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들의 삶은 생명을 드려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38절부터 4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구약 성경에 예수님은 정말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사람으로 오시고 이 땅에서 가난하고 초라하게 자라시고 생활하실 것이며 또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비참하게 돌아가신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예언하고 있는 시편 22편에도 참혹하게 고통 속에 돌아가실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사지내는 것만큼은 부자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539절 말씀은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했는데, 히브리어의 정확한 번역은 그의 무덤은 악인과 함께 있도록 지정되었으나 그는 죽음에 있어서 부자와 함께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에 부자들이 참여 할 것이라고 예수님 오시기 칠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주님의 시체를 장사 지낸 사람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유대 관원이었던 니고데모였습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생존 시에는 신앙인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사람이고 아리마대 요셉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예수님의 장례식을 이들이 치렀던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장사하게 되면 유대관리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니고데모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합니다. 이 행동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산헤드린 의원직과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걸어야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이일로 인해 고난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장사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밝히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면 출교하기로 자신들이 결의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선택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장차 말할 수 없는 수모와 핍박을 자처하는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숨어 있는 신앙에서 드러내는 신앙으로 전환된 것이었습니다. 비겁한 신앙에서 담대한 신앙으로 변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들이 변화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의 이유를 알았기에 기꺼이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을 장사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야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지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 속에 숨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않고 살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자신을 드러냈을 때 당할 모든 손해와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드러낸 것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답게, 주님의 놀라운 생명을 얻어 살고 있는 자답게 성도로서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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