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너ㅐ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디모데후서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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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따르면 중세 시대 지도의 가장자리에는 지도 제작자들이 당시에 알던 세계의 경계를 표시하면서 그곳에 숨어 있을 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생생한 그림과 함께 "여기에 용이 있다"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중세의 지도 제작자들이 그 글을 썼다는 증거는 많지 않지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곳에 접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뭔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엄숙한 경고를 주려고, 나라도 그 때에 "여기에 용이 있다" 라고 썼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호하는 이런 자기 보호와 위험을 피하는 방식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용기(디모데후서 1:7) 와는 정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내가 정말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런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바울의 말처럼, 망가진 이 세상에서 용기 있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때로는 고난일 수 있습니다(8절). 하지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뒤 성령의 삶이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데 (9~10, 14절) 어찌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믿기 어려운 선물을 주시는데 두려움으로 뒤로 물러선다면 정말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만나게 될 어떤 것보다도 더 나쁜 일입니다(6~8, 12절).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과 미래를 맡겨드려야 합니다(12절).
◈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대적하라고 하시는 어떤 짓누르는 두려움이 있습니까? 다른 성도들의 격려가 어떻게 두려움을 이길 용기를 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 디모데후서 1:7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찾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