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기적을 낳고 만남은 구원을 이룹니다. 누가복음 17장 11-19절

by 하림 posted Dec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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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기적을 낳고 만남은 구원을 이룹니다.

누가복음 17장 11-19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시다가 한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시고 그들의 외침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하였고 주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순종하여 돌아갔고 가다가 모두 나음을 입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 열 명 중에 한명인 사마리아인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했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는 주님께서 죄인을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를 지나시면서 의도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의도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다가가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나아갈 수 없었던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 주님의 의도된 발걸음이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셔서 거라사 지역의 광인을 치료하시고 돌아오신 것도 그러하고 여리고로 찾아 가셔서 삭개오를 만나신 것도 그러하며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찾아 가신 것도 그러합니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셔서 우리의 모든 간구를 친히 들어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순간 주님을 인식하며 승리의 삶을 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순종은 기적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은 보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갔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치료해 주신 후에 가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고름이 나오던 곳이 마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뭉그러져 사라진 코가 치료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말씀만 듣고 간 것입니다. 이 모습은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던 것과 같습니다.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평안히 가라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은 허락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가서 먹고 다시는 수색이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백부장이 하인의 병의 치유를 위해 간구하였을 때 주님을 직접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셨지만 그는 말하기를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합니다. 먼저 보여주시길 기대하고 표적 보기를 사모하며 신비적인 경험을 말씀보다 사모하고 신뢰합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러면 안 됩니다. 오직 말씀만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관심은 육적 회복이 아니라 영혼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본문을 통해 얻는 은혜는 “감사”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주제는 감사가 아니라 육적 회복을 통한 영혼 구원입니다. 주님께서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왜 너만 감사하느냐 아홉은 왜 감사하러 오지 않느냐고 하시며 그들이 감사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끝까지 읽어보면 주님께서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을 찾으신 것은 그 사건을 통해 그들이 만나야 할 자신을 왜 만나러 오지 않았느냐는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육적 회복을 통해 자신이 참 메시야임을 알게 하시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구원을 얻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사는 떡에 있습니다. 주님을 찾는 이유도 떡, 기도하는 이유도 떡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게 주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했던 떡이 주어지지 않으면 주님을 향해 돌을 들 자들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호산나라고 외쳤던 자들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야가 아닐 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목적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매일 떡만을 찾는다면 그는 언젠가 주를 부인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육적 회복입니까? 영혼의 구원입니까?

 

기억합시다.

 

순종은 기적을 낳고 만남은 구원을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