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얻게 하심2

요한복음 316-21

 

지난주에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에 대해 첫 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말씀하시려 했던 핵심인 영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설날맞이 씨름대회에서 카메라가 선수들이 서로 샅바를 유리하게 잡기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수의 허벅지 쪽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는데 그 장면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팬티에 매직으로 쓴 글 때문입니다. 그 글은 영어 J0hn이란 글과 숫자 3 그리고 16이라는 글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시작절인 요한복음 316절을 나타내는 문구였습니다. 그의 이름도, 그 경기의 결과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허벅지에 쓰인 요한복음 316절이란 글에 생각이 멈추어 그가 그 성구를 쓰고 나온 이유에 대해, 그리고 그 선수의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성경말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얻은 영생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말씀하신 구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서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16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부터 그 사랑은 시작되었으며 그 사랑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절 말씀에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으로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시고 이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입은 인간이 하나님이 사람을 신뢰함의 증거였던 언약을 어겼을 때도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고 여인의 후손(3:15)을 약속해 주셔서 하나님과 회복할 수 있는 근거와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후에도 완전히 타락한 인류를 멸하실 때도 노아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했고 후에도 아브라함을 통해 한 구별된 민족을 만드시고, 모세를 통해 제사제도를 주심으로 다시 그 관계를 이어가셨으며 성막과 성전을 통해 그 관계를 계속 지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쉼 없는 사랑은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로마서 56절부터 1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로마서 521절은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을 가리켜 독생자라고 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독생자란 노모게네스라는 단어로 성품과 속성에 있어서 유일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보내셨다는 말이 있는 이 말은 헬라어 디도미라는 말로 그 뜻은 보내다, 넘겨주다, 값을 지불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 웨스트 콧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말에서 제물을 바치는 일을 암시한다.”고 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로 보내셨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죽음을 전재하고 보내신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모리아산까지 3일 길을 걸으며 갈 때 아들을 번제로 드릴 것을 각오하고 갔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시작하시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라고 한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지만 로마서 57절과 8절에서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들으신 바대로 이 예수님의 사랑은 이론이나 말이 아니라 응분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여 주신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롭거나 살릴 가치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이 근거가 되어 그 사랑의 결과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 절 후반에서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의 근거는 믿는 자마다입니다.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그것은 14절에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광야에서 사망을 준 놋뱀이 심판을 받아 나무에 달린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고 나무에 달려 심판을 받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습니다. 스가랴서 3장에서 죄로 더렵혀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옆에는 참소하는 사탄이 서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 사탄을 책망하시며 여호수아의 죄로 더렵혀진 옷을 벗기라 명하시며 그에게 새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도 성도의 구원을 말할 때 요한계시록 611절에서도 주께서 성도들에게 흰두루마리를 주셨다고 하셨고 요한계시록 714절에서도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빤 자라고 했으며 요한계시록 198절에서도 성도들이 입은 흰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고 있는데 그 행실은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믿음을 지킨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의 근거는 오직 믿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의해야 할 또 다른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멸망과 영생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공간이나 상태는 없는 것입니다. 연옥과 같은 위치도 없고 그와 비슷한 어떤 곳도 없습니다. 오직 멸망과 영생, 이 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사건이 이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이란 과거적이며 현재적이고 미래적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은 성도의 구원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어주심으로 성령의 인 쳐주시고 보증해 주심으로 구원, 즉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 이야기 속에서 이 둘을 혼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절과 5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셨던 예수님은 15절부터는 영생이란 말로 바꾸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와서 죽어서 갈 나라에 대해 강조하며 의문을 가졌고 주님은 그와 눈높이를 같이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에 갈 장소적 개념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다른 개념의 영생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이미 영생을 얻었고 현재도 누리며 미래에도 영원히 누리는 것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특별히 현재 누리는 영생을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23절과 24절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마르다와 대화하시면서 영생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의 90년경을 살아가고 있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을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주후 70년 이후에 회당에서 쫓겨났습니다.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에게서 끊어짐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유대 회당에서 쫓겨나더라도 이미 생명을 얻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는 영원한 생명이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알고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가 쓴 요한일서에서 영생의 다른 말로 하나님과 사귐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서인 요한복음도 그러한 개념의 말씀들을 아주 많이 하고 있습니다.

14절에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했고

1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으며

526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고 하셨으며

654절에서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17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를 대속하셔서 그것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기로 한 그 은혜를 믿으며 우리 주변도 생명 얻게 하는 일에 힘을 다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본 절에서 다시 한 번 구원의 근거에 대해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로 말미암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에 대해 다음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7절에서 그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본 절에서는 믿는 자믿지 아니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지 아니함으로 받은 심판에 대해 벌써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벌써란? “심판을 받은 것을 수식하는데 여기서 심판을 받은 것이란 헬라어가 케크리타이란 말로 완료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영생에 대해 말씀드릴 때 설명 드렸듯이 우리의 구원과 심판은 이미 과거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의 근거는 말씀을 듣고 믿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은 자는 영생을, 믿지 않은 자는 심판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사후에 결정될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가 그렇고 현재가 그렇기에 미래인 사후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현재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이미 영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3:20)고 했고 베드로는 성도들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정의해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로 하늘나라 백성으로 이 땅을 살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성도에 대해 말한 바울은 이 후에는 믿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심판을 받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인데 그 이유가 그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이 어둠을 사랑한 이유는 어둠 속에서 죄를 지으며 그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나무 뒤에 숨어 죄의 수치를 가리려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배를 타고 땅 끝으로 도망하려 하려 배 밑창에 숨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빛이신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용서함을 입은 성도는 당당함으로 빛이신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은혜를 구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316절 말씀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아직 영생을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그들도 영생을 얻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혹시 팀 티보우라는 사람을 아십니다. 오늘 그를 소개하고 마칠까합니다.

 

그는 2012 타임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100인에 선정된 유명한 미식축구스타입니다.

많은 언론과 팬들이 대학시절부터 그를 주목한 이유는 그의 축구 실력도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글자가 쓰인 아이패치를 붙이고 매 경기 출전하는 그의 모습이 매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글자는 다름 아닌 성경 구절입니다.

주로 요한복음 316이었는데 가끔 시편 231절도 적었습니다.

 

그는 필리핀에서 선교하던 선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엄마가 그를 임신했을 때 아메바성 감염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 낙태를 권했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려 약을 먹지 않았고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머니께 크리스찬 홈스쿨링을 받은 그는 미식축구를 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으며 이후 풋볼 명문인 플로리다대학교에서 두 번 전국 우승을 일궈내었습니다.

또한 2010NFL에 데뷔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언론으로부터 약점을 계속 지적받았으며 고등학교 시절의 우승을 깎아내리는 기사가 이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시즌의 처음은 후보 쿼터백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즌 초반 팀의 부진이 이어지자 감독은 티보우를 선발 쿼터백으로 끌어올렸고 그 때부터 기적은 시작되었습니다.

팀은 '역전의 명수' 가 되었고 별명도 하나 얻었는데 티보 미라클이었습니다.

그가 선발로 나온 8경기 중 7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그 중에서 4승은 스쿼터 혹은 연장에서 이루어진 역전승이었습니다.

그는 경기시작 전에 극적인 역전의 터치다운을 만들어낸 후에 그리고 경기 후에 한 쪽 무릎을 꿇고 한 손을 이마에 댄 채 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티보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사전에도 등재되었습니다.

그리고 201218. 피치버스 스틸러스와의 NFL 결승전이 있었습니다.

3쿼터 2323의 동점인 상황에서 연장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는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 번 역전의 명수가 되었습니다.

환호와 함성이 가득한 그 경기장에서 수백 대의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는 환호와 함성이 아닌 '티보잉' 세레모니를 하게 됩니다.

대학리그 때부터 아이패치로 요한복음 316을 알렸던 그가 이날 기록한 10개 패스의 총 길이는 316 야드(yard)였고 리서치 조사 결과 이 날의 경기 시청률은 31.6%였습니다.

덴버팀이 승리한 후 '요한복은 316'은 구글에서 1212천만번의 검색건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티보 미라클리아는 칭찬보다 스포츠 선교사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 구절, 이제 우리 주변을 향해 전하여 그들로 영생을 얻게 하는 우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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