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 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듣지는 않을래 기도는 해줘

예레미야 371-10

 

몇 주 동안 예레미야가 과거 사건을 언급하며 하던 말을 보았습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 3차 침공을 받아 포위되어 있던 때에 예레미야가 그 원인을 과거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경고하셨던 것을 언급하며 현재의 어려움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라는 사실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주어진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실이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말년에 바벨론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던 때를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오늘 본문이 주어진 시기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다스리던 때였고 그 말기였습니다. 본문에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는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입니다. 시드기야의 선왕이었던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가 죽었고 그의 아들 고니야도 왕위에 오른 지 100일 만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 후에 여호야김의 동생이고 여호야긴의 삼촌이며 요시야의 마지막 아들인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이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해 본문은 느부갓네살이 왕을 삼았다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나라는 왕도 스스로 세울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기울었고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충성해야 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와 그의 백성의 신앙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시드기야를 비롯한 신하와 그 땅 백성 즉, 남유다의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이미 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배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므로 망하지 않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이를 이 시대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 시대 교회안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를 말하고 그래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말할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합니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전 세계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하고 선교비는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낸다고 자부하고 교회규모로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교회가 여럿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좀 언짢겠죠?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열심히 없습니다. 예배를 안 드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안듣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듣기 원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을 지지해 주는 소리뿐입니다. 주를 위해 죽고, 주의 백성답게 살아가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라는 말에는 귀를 귀 울이지 않습니다.

 

예를 좀 들까요? “원수를 사랑하라”(5:4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5:13-16),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6:9),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대라”(5:39),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13:13)

 

찬송가 중에 주 앞에서 저를 부끄럽게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 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무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제 자신을 복음 앞에 서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결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3절입니다. 3절 가사는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라는 내용입니다. “멸시천대 십자가를 제가 지고 가오리다라는 가사에서는 정말로 부끄럽습니다.

 

저는 일명 주의 종이라고 불림을 받지만 멸시천대 십자가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영광 받고 칭찬받고 평안하게 살면서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당하면 분노하고 슬퍼하며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것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어제 주일을 준비하는 중에 하수가 넘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손을 넣어 펌프를 재가동시키고 악취를 참으며 두껍게 낀 기름때를 제거하면서 잠시 불평이 나왔습니다. 언제까지......, 정말 지겹다......, 뭐 이런 것이죠. 이렇게 속으로 불평하고 있을 때 제 집사람이 어린이 예배실에서 피아노 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무너졌습니다. 찬양의 제목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냥 주님께 죄송했습니다. 잠시 더러운 것 만졌을 뿐인데 투덜거리고 원망하는 못난 저였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기꺼이 골고다 언덕 오르신 주님의 은혜가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죄송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자신 속에서 들리는 탐욕의 소리에 더 예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세상가치관의 소리에 더 귀 기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시드기야와 그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찾아와 한 행동이 3절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시드기야의 행동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보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바벨론이 자신들을 공격하자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 히스시야 시대에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철수하였던 그런 기적을 여호와께서 다시 베풀어주시지나 않을까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왕하 19:32-37).

 

본문 4절과 5절도 읽고 이 기도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4절과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본문을 보면 당시에 예레미야는 갇혀있지 않았고 바벨론 군대는 애굽 군대를 막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은 단지 바벨론의 공격을 막아달라는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들을 도우러 온 애굽 군대가 바벨론 군대를 모두 완전히 몰아내 주기를 바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이 모두 이럴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귀 울이지 않다가 위기에 처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을 찾는 것이 간사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움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조상이 그렇게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들이 요구하면 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달리 행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참고 참으신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망가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런 기도를 들어주는 것은 자녀인 그 백성을 더 망하게 하는 것이기에 이번에는 들어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슬픈 것은 악한본성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그 풍성한 사랑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에 징계, “파이데이아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12)

 

사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어야 합니다. 요나의 지적을 받고 회개했던 니느웨처럼 회개하겠다고, 사무엘의 말씀을 듣고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회개했던 그들의 조상들처럼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자신 앞에 있는 어려움만을 위해 기도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했던 시드기야와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6절부터 8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시드기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은 멸해 주시겠다거나 평안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라는 말씀입니다.

 

당시에 기록된 라기스 서신에는 유다군의 지휘관이 애굽에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다군의 지휘관이 애굽에 간 것은 원군을 요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가 요청했던 애굽 군대, 시드기야가 의지했던 애굽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돕는 듯 했으나 그들은 이내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시드기야의 이런 행동은 이사야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만 의지했던 히스기야와 완전히 대조되는 행동이었습니다. 히스기야도 처음에는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에 대항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 말을 듣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앗수르에 대항하여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드기야의 생각에 하나님 보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탁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재앙이 다시 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드기야처럼 어리석습니다. 시드기야가 요청했던 애굽 군대의 도움으로 물러간 바벨론 군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입니다. 그것이 잠시일 뿐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자신의 잔꾀로 잠시 성공하고 이익을 보면 하나님보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재앙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허무한 것을 의지한 시드기야와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9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인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것에 대해 확신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 말씀을 전했던 에스겔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13:6,7)라고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충동질이 우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것을 말해주고 그것을 믿게끔 여러 가지 말로 설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소리를 듣길 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중에 얻은 느낌을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확신하고 그것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이쯤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듯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 좋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본문과 관련하여 믿는다는 것과 믿음이 좋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믿음이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뭘 믿어야 할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근본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말하며 다음으로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심과는 상관없이 때로는 환란이나 궁핍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받는 것을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도하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을 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좋은 믿음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거나 느낌이나 분위기를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말하며 허무한 것을 확신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탐욕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바른 뜻이 보여야 바른 성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듣지는 않고 헛된 것을 의지하고 이기적인 욕심이 이루어지기만을 위해 기도만 해달라는 이들을 징계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지 않을 것을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하나님은 시드기야에게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너희가 바벨론의 온 군대를 쳐서 이기고 바벨론은 부상자만 남는다고 해도 그들을 통해 예루살렘을 불 지르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은 듣지 않고 잔꾀를 부려 애굽을 의지하는 예루살렘은 반드시 멸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분노하시고 계시나요?

그것은 오늘 제목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는 않고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기도해 달라는 간사함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가 듣지는 않을래 기도는 해줘라고 말하는 자는 아닙니까? 그러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무언가 달라는 기도 내용보다 감사 할 것이 더 많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면 주님께 달라는 기도보다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는 기도가 더 많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면 삶이 환란으로 가득했던 과거가 평안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듣지는 않을래 기도는 해줘라고 하는 자가 아니라 들을래 그리고 그 뜻대로 살기위해 기도 할래라고 하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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