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

(베드로전서 5장 7~14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베드로전서 57-14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재료는 불안이랍니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서 물건을 파는 것이죠.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재료도 불안입니다. 사람들은 이 불안한 삶 앞에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이 염려와 근심은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오늘을 살아야 하는 모든 인생 속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인의 성향에 대해 기록하는데 그것은 성을 쌓는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쫓겨나 아들 에녹을 낳고 에녹성을 쌓았는데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은 재물을 쌓아 놓습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를 짓고 곡식을 가득 채운 후에 자신의 영혼을 향해 안심하라고 한 것처럼 자신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쌓는 것이죠. 그래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고난당하는 자가 있을 때 일반적으로 하는 위로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지 마 어떻게 되겠지 뭐”, “용기를 내”, “설마 죽기야 하겠니?”, “죽을 용기로 살아”, 잘 될 거야등입니다.

 

이 말들을 깊이 생각해 보면 모든 위로가 대책은 없고 막연한 기대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이런 막연한 기대감이나 위로의 말이 아니라 염려를 이길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거나 근심거리가 있을 때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하며 염려하지 않고 고난을 이기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고난 속에 있지만 염려는 하지 않는 성도들로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전체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 중에서 먼저 9절 말씀을 봅시다.

 

9절을 같이 읽읍시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이 말씀이 위로가 되는 것은 지나간 모든 성도들과 현재 우리와 같은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사는 모든 성도들이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동일한 고난을 당했고,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난은 원어로 파데마입니다. 그 뜻은 고난, 고통, 불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도 고난 즉, 고통과 불행이 있다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과 고통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고난을 당할 때 생각하기를 고난은 자신에게만 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착각하기를 강북사람들이 강남사람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더 기도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대적으로 부요하지 못하고 열악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천석꾼에는 천 가지 걱정이 있고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러 온 사람들의 차량을 보면 소형차도 있지만 중, 대형차들이 즐비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당하는 고난만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님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사역 중에는 편히 쉬거나 먹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가르쳤던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십자가에 달리는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많은 매를 맞는 육체적 고통과 죄 없이 죽어야 하는 억울함의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고난 중에 있다면 그 고난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고난의 행렬 속에는 저를 비롯하여 함께하는 성도들이 있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항상 기억함으로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고난에 대한 위로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고난, 즉 고통과 불행은 10절의 말씀처럼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이란 단어 올리곤은 시간이나 정도 둘 다를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영원과 비교하면 짧은 것이며, 그것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과 비교하면 경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결코 길지 않고 영원하지 않으며 크고 중하지 않다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고난은 결코 성도를 죽이거나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사실 고난이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의 심령에 주는 것이 바로 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첫 번째 단계가 이 염려입니다.

염려가 한번 시작되면 그것은 그냥 염려로 끝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 염려라는 놈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데 그것은 원망”, “절망”, “불신”, 심지어는 자살등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고난이 와도 염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염려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52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그 키가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처자식이 굶어 죽게 되어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해가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문 앞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어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밤을 새우고 머리를 싸매고 염려해도 그것들 중 하나도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듯 백해무익한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염려가 하고 싶거든 어찌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까? 어찌하면 이 고난을 믿음으로 이길까? 어찌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를 염려하십시오.

 

바라기는 삶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염려하지 않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본문에도 있습니다.

7절과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사탄이 염려를 통해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실족하는 첫 단계가 염려입니다. 사탄은 이 염려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넘어뜨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7절에서 염려를 주께 다 맡겨 버리라고 말씀해 놓으시고 8절에서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로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다가 틈만 보이면 어디서나 언제든지 틈을 타고 공격하여 오는데 그 틈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는 사자 같은 사탄, 그는 삼킬 자를 찾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염려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염려하는 자는 이미 그 믿음의 둑이 무너지고 있고,

염려란 염려하는 자가 이미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는 자는 사탄이 세상적인 미끼를 살짝 던져도 곧 그것을 물기 때문입니다.

허기진 물고기가 가짜 파리미끼를 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탄에게 내가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큰 소리로 떠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탄은 지금 염려하는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는 너무나 쉽게 사냥하여 삼킬 수 있는 병든 동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염려라는 빈틈을 사탄에게 보이지 않아 사탄이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우리는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과 이유, 그리고 그 유익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방법입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7절을 다시 읽읍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본문에서 맡겨버리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립토입니다. 뜻은 던져 버리다입니다. 우리번역은 아주 젊잖게 의역된 번역입니다. 영어 성경은 문자 그대로 직역했습니다. 그래서 주라”, “give” 라고 번역한 NLT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경은 “cast” , “던지다라고 직역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의미는 염려는 아무 가치가 없으므로 주님께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돌아보거나 조금의 애착도 같지 말고 던져 버리라는 뜻입니다. 미안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던집시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염려를 던져버리시기 바랍니다.

 

주께 맡겨버리라”, 던지라는 말은 인간의 의지에 강조점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염려가 찾아 올 때 의지를 갖고 염려하지 않으려고 믿음으로 그것들을 이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기 위해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시잖습니까? 일반적으로 염려란 것은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심려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을 자기가 맡으려는 교만입니다.

이러한 교만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과 몸에 병을 주어 손해만 입히게 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염려될 만한 것들을 주님께 맡겨 버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 앞에 던져 버리고 주를 믿음으로 그것들이 해결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지혜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버리는 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염려를 벗어버리는 방법이 주님께 던져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 베드로는

그렇게 해도 되는 이유를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보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돌보다란 헬라어로 멜로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관심을 가지다, 돌보다, 걱정하다, 염려하다, 괴로워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 돌보심은 심지어 우리를 걱정하시고 우리 문제를 대신 염려하시고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인해 괴로워하실 정도입니다.

 

그래서 Vincent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은 흥미와 사랑으로 조심성 있게 돌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올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며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자비한 주님의 품에 안겨 그 모든 문제를 맡기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한계를 시인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전존재를 내맡기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1절에서 말씀하시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성도들은 어떠한 어려운 문제를 만나든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내맡기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으로 조심성 있게 돌보고 있다.”는 것을 믿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고난의 시간을 염려하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통과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을 같이 읽읍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유익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고난의 시간은 우리를 온전케 하며 굳게 하며 강하게 하고 터를 견고케 하시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기서 온전케 한다.”는 말은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온전케 하다.”라는 말의 원어는 카탈티조라는 말로 준비하다, 회복하다, 완전하게 하다.”라는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뜻은 회복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KJV 만 완전이라는 의미의 “perfect”라고 번역했고 다른 대부분의 성경들은 회복, 재건이라는 뜻의 “restore”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을 직역하면 잠시 동안 너희가 고난을 받은 후에 너희를 친히 회복케 하시며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고난 받은 후에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 후에 회복의 은혜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회복은 고난 가운데서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고치거나 회복시켜서 완전케 하여 주신다 이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은 고난을 염려하지 않고 통과하고 나면 주어지는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회복시켜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회복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셔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질 수 있도록 그 터를 견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하지만 그것에 넘어지지 말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깁시다.

이제 우리는 파도같이 밀려오는 고민을 기도로 바꿉시다.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염려를 찬송으로 바꿉시다. 우리를 엄습하는 불신을 말씀을 묵상함으로 이겨냅시다.

잠시 있을 고난의 시간을 믿음으로 이겨 회복의 은혜를 입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회복이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굳게 되며 강하게 되고 터가 견고케 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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