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6.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 니하리라

18.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네가 나를 믿었음이니라

예레미야 3915-18

 

38장에서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은 백성들과 하나님보다 백성들을 더 두려워했던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가 경고한 대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은 비참한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그 때 벌어진 일을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본문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과정을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왕위에 등극 한 후 9년 째 되던 해 10월에 예루살렘은 포위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 제 1149일에 함락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좀 더 추가 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드기야 910월에 포위되고 114월에 함락되면서 성전이 파괴됩니다. 그리고 한 달 후 5월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고 두 달이 지난 7월에 총독 그달랴가 암살을 당하면서 유다와 그 수도 예루살렘은 완전 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무너지는 과정을 말하는 가운데 3절을 보면 바벨론의 관리들이 예루살렘 중문에 앉았다고 표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문은 지금 어디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이 문을 추측할 수 있는데 당시 예루살렘은 두 개의 언덕 위에 세워졌었습니다. 남쪽의 시온과 북쪽의 아크라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계곡이 있었습니다.

 

중문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쉽게 짐작되다시피, 이것은 예루살렘의 두 언덕 사이의 계곡 한가운데에 있던 통로였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두 언덕은 때로는 상 예루살렘, 하 예루살렘으로도 불렸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북쪽 편에서 성을 파괴하고 진입해 들어왔을 것이고 진군하여 이 중문을 장악함으로써 성 전체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의 관리들이 중문에 앉았다는 표현은 예루살렘은 이미 함락 당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망한 것은 어제오늘 말씀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모압 광야에서 모세가 신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말씀 하시기를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뽑힐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28:58-64)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먹히지 않았고 도리어 시끄러운 잔소리 정도로 여겨졌기에 패망에 이른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준행하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나라가 망할 때 시드기야의 행동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성이 함락 될 때 시드기야의 행동입니다. 그는 북쪽에서부터 성을 함락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중문까지 내려온 것을 보고 그는 남쪽의 비밀 문을 통해 도망갔습니다. 본문에 왕의 동산 길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 자리는 예루살렘 남동쪽 실로암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통해 도망갔습니다.

 

그는 성이 함락되어 백성들은 바벨론에 의해 도륙을 당하고 있을 때 자신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눈에는 과거에도 현재도 백성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였습니다.

 

왕의 이런 모습은 에스겔을 통해 이미 예언되어졌던 사실입니다. 에스겔은 에스겔서 12장에서 행장을 꾸미고 포로로 끌려가는 행동을 행하게 함으로 시드기야가 도망가다가 잡혀 죽게 될 것을 예언했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설마 하다가 환란이 임함 것입니다. 간사한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자신과 백성들의 생명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강퍅해 지면 모두가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청지기라고 하고 있습니다.그의 강퍅함은 백성들의 장자와 자신의 맡아들을 죽이고서야 사라지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강퍅해져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뒤를 쫓았다가 모두 홍해에 수장되는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대 왕 사울도 그러하였고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도 그러했습니다.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지닌 이도 있습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장 사랑하셨는데 그를 사랑하신 이유는 그가 대단하거나 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지적받았을 때 언제나 통회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이킬 줄 아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죽는 날까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성실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17:1)

 

바라기는 말씀을 들어야 할 때 들을 수 있는 귀와 순종의 용기를 발휘하는 지혜가 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도망간 시드기는 얼마 가지 못해 바벨론 군대에 잡히고 맙니다.

5절부터 7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시드기야와 그의 일행들은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동쪽계곡을 따라 여리고 평지로 도망쳤으나 그곳에서 잡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잡혀 지금의 시리아 땅에 해당하는 곳인 오론테스 강 주변에 있는 하맛 땅 립나라는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으로 끌려간 것은 립나가 당시 수리아지역의 심장부였기에 그곳에 느부갓네살이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의 얼굴을 이런 식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다면 좀 더 편한 관계로 볼 수 있었던 얼굴을 이제는 두려움으로 보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곳에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시드기야를 징벌했습니다. 먼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가운데 죽였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는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옮겨 가기 위해 쇠사슬에 매이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시드기야가 이렇게 쇠사슬을 맨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과거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 예레미야를 통해 나무멍에를 매게 될 것을 예언하였지만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그것을 부수었던 일이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나냐와 그 백성들에게 너희가 나무 멍에를 꺽었이니 내가 쇠멍에를 매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현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자신들의 소유가 될 것처럼 여겼던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8절부터 1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특별히 성전이 자신들 안에 있는 것으로 인해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불사름을 당하며 허물어짐을 당하고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유였던 토지는 빈천한 자들에게 맡겨져 경작되었고 그 세금은 바벨론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들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잠시 맡겨두신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방법과는 상관없이 쌓은 것들은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건 인관 관계이건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3절부터 보면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8)하고 자신의 영혼에게 이르기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9)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주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영혼을 부요하게 하는데 유익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물질을 비롯한 이 땅의 것들은 쌓는데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시간, 건강과 물질은 우리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흐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흐르는 물을 썩지 않듯이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자랑하며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가 망한 것을 기억합시다. 그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내탕고를 자랑했다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 갈 것이라는 이사야의 책망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우리에게 있는 썩을 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의지하여 영원을 보장 받으려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불타고 무너질 때 노략물을 얻음같이 자신들의 생명을 구원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먼저 예레미야입니다.

11절부터 14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이에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과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가운데에 사니라

 

본문을 보면 예레미야도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리고 40장 초반에도 예레미야가 잡혔다가 풀려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예레미야가 잡혔을 때 느부갓네살의 보고를 받고 관리들에게 명령하기를 예레미야를 그다랴에게 넘겨주어 집으로 데려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다랴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세워진 유대의 1대 총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고 총독부가 미스바에 생기는데 아마도 그곳으로 옮겨 간 듯합니다.

 

40장 초반에는 예레미야의 의견을 물어 유다 땅에서 자유 한 몸이 되게 허락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란의 때,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고 성전도 불에 탈 때 예레미야를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건짐 받은 사람은 예레미야 뿐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으로 읽었던 15절부터 18절에 등장하는 에벳멜렉입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에벳멜렉은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있을 때 왕에게 나가 그들이 한 행동을 악하다고 책망하고 예레미야를 구출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예레미야를 구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환란을 당할 때 그를 건졌던 에벳멜렉을 잊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치른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쓰면서 자신이 네로의 박해 때 소아시아에서 잡혀 로마로 압송되어 사형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을 찾아 온 오네시보로와 그의 집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딤후1:16)

 

요한3서를 보면 요한이 가이오에게 편지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가이오는 전승에 의하면 사업이 망하고 몸도 병이든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순회전도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이 칭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환란의 때에 건지신다고 스가랴서에서도 약속했습니다. 스가랴서 23절에서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환란 때에 건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성도는 심판 받지 않습니다. 에스겔서 9장을 보면 의인의 이마에 인을 치게 하신 후에 이마에 인이 없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도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심판하지 못하게 하고 인이 없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성도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714절의 말씀대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오늘 본문을 달리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본문 가장 마지막에 이는 네가 나를 믿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레미야와 에벳멜렉이 구원받은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유일한 근거, 그것은 믿음입니다. 왕과 방백과 거짓 선지자와 예루살렘의 부패한 제사장들이 예레미야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에, 예레미야는 끝까지 말씀을 전했고 에벳멜렉은 홀로 예레미야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후에 한명이 더 구원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예레미야를 도와 말씀을 전했던 서기관 바룩입니다. 그도 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한 산 믿음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믿음에 대해 1135절부터 38절에서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먼저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근거하여 성도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헛된 것에 끌려 세월과 삶을 허비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싸우고 세상의 요구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A’라고 할 때 세상이 ‘B’라고 하며 우리를 겁박해도 우리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A’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시대 믿는 주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디모데 후서 18절에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고 312절에서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권세 잡은 사탄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이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죽음 앞에서 고백했던 고백을 우리도 합니다. 이 고백을 읽어 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

  1. 17
    Jan 2016
    17:43

    에스겔 36장 37-38절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By기타치는목수 Views837 file
    Read More
  2. 15
    Jan 2016
    00:11

    시편 1편 1절~6절(복 있는 사람) - 하림교회 황규관목사

    By기타치는목수 Views8406 file
    Read More
  3. 29
    Dec 2015
    09:52

    (예레미아강해)예레미아 42장 18~22절(마음을 속이지 말라)-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By기타치는목수 Views1616 file
    Read More
  4. 20
    Dec 2015
    23:38

    요한복음 1장 1~14절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 - 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By작은제자 Views6420 file
    Read More
  5. 13
    Dec 2015
    20:09

    (예레미야강해)예레미야 39장 15-18절(내가 나를 믿었음이리라)-하림교회 황규관...

    By작은제자 Views1823 file
    Read More
  6. 06
    Dec 2015
    21:38

    (예레미아강해) 예레미아 38장 1~6절 (누구를 의식하고 사나요?)-하림교회 황규...

    By작은제자 Views1443 file
    Read More
  7. 29
    Nov 2015
    16:20

    (예레미아강해) 예레미아 37장 1~10절 (듣지는 않을래 기도는 해줘)-하림교회 황...

    By작은제자 Views1556 file
    Read More
  8. 22
    Nov 2015
    15:55

    (예레미아강해) 예레미아 36장 27~32절 (예언을 멸시치 말라)-하림교회 황규관목사

    By하림 Views1391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 68 Next
/ 68

Address: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77길 49 하림교회 (청담동 10번지)Tel: 02-456-3927Email: haezra@hanmail.net
Copyright 2000 스토리바이블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Nature w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