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밭을 사리라

예레미야 3236 - 44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30장에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고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고 31장에서는 새언약을 맺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 약속들은 공허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임을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확정은 예레미야에게 땅을 사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이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지만 반드시 회복되어 돌아와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회복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먼저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이 주어진 시기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입니다. 이 시기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포위되어 있었던 때입니다. 예루살렘은 시드기야 9년에 포위되어 11년에 함락되었는데 포위된 지 일 년여 세월이 흘렀을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던 때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때 예레미야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습니다.

 

2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3절부터 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선포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지적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저 칭찬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앞에서는 아니라고 자신이 잘못했을 때 언제든지 책망해 달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면 한 두 번은 자신이 말한 대로 반응하지만 거듭되면 피하거나 대적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가둬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두 가지 자세를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 가지는 형제의 잘못에 대해 사랑으로 권면하는 자세와 그 권면을 기쁨으로 받을 자세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한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6절부터 9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예레미야의 사촌 하나멜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땅을 사라고 하고 예레미야는 그 땅은 은 십칠 세겔을 주고 사고 있습니다. 이 일이 벌어진 이유와 그것을 기록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가 얼마 있으면 망하고 모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한 예레미야의 말과 땅을 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그것은 남의 것이 되기에 그것을 팔아 현금화 시키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친척 하나멜은 땅을 판 것인데 예레미야는 바보같이 그것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요? 그것은 30장과 31장에서 예레미야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바벨론의 멍에를 꺾을 것이고 다시 돌아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돌아온 자들이 그 땅을 소유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레미야는 땅을 사는 행동으로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14절과 15절에서 이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과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그렇죠? 본문에 다시 사게 되리라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라의 회복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기에 담아 보존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토기에 담아 보존하라는 말은 당시 사람들은 계약서를 토기에 담아 땅에 묻어두었던 습관을 따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36절 후반부에 이 약속을 구체화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6절과 3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로 인해 끌려가고 고난당했던 땅에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살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회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이것을 그림자로 하여 우리들의 영적인 상태와 회복 또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졌던 존재였습니다. 생명이 아닌 사망에 거했습니다. 가인이 쫓겨나 거했던 놋땅이 우리의 삶의 주소였습니다.

 

놋이란 지명의 뜻은 방랑입니다. 죄로 인해 방랑하던 존재였던 우리였습니다. 때로는 쾌락이 최고인 줄 알아 육체적인 쾌락을 좇아 살았고 때로는 재물이 최고라 여겨 재물을 추구하는데 힘을 다했으며 때로는 명예가, 때로는 권력이 최고라 여겨 그것들을 좇아 살았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잠언 10장을 25절에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고 했고 30절에는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회오리바람에 흔들리고 땅에 거하지 못하며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돌아오게 하였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6절은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과거는 요한복음 844절의 말씀처럼 마귀를 아비로 둔 자들이었으나 주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거하는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를 본문은 안전하게 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당연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으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주셨고 식물이 떨어졌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애굽의 병거와 아말렉의 공격도 막아주시는 은혜를 입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메소보타미아 연합군들에게 포로로 끌려갔던 조카 롯을 구출해 온 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15:1)라고 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구원받은 모든 백성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인 것입니다.

 

스가랴는 포로에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다가 주변 사람들과 페르시아 정부의 방해 앞에 15년 동안 멈춰있었던 성전의 건축을 재개하라고 촉구하는데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2:5)라고 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마라의 쓴물 사건과 엘림이라는 장소를 통해 안전하게 할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라는 쓰다, 고통이란 뜻을 가진 장소였으나 하나님의 인도를 상징하는 막대기를 통해 달게 되었으며 그 다음은 칠십 종려나무와 열두 샘이 있는 엘림을 통해 완전한 쉼을 허락하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환란과 어려움으로부터, 세상의 가치관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돌아오게 하시고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돌아온 당신의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3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이 말씀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도 하셨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95절과 6절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부르신 백성과 언약하기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몇 가지 은혜를 허락하시겠다고 하고 계십니다.

 

39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먼저는 한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상 숭배로 인해 분열된 마음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섬기는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세상 것에 영향 받아 명예와 재물과 쾌락과 성공 등을 추구하며 살던 마음을 제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마음을 주셔서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5절부터 8절에서 우리들이 품어야 할 한 마음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을 통한 한 마음입니다. 에베소서 44절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소망이란? 한 마음인데 에베소서 412절에서 분명히 밝혀 주기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한 길이 주어졌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한 길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이란 히브리어로 데레크입니다. 이 단어를 전에도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단어는 태도습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한 마음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은 한 가지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며, 그분이 원치 않은 삶은 힘들어도 버려야 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그분이 시키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 길이 주어진 자의 합당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음과 한 길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20절과 21절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하였고 로마서 147절과 8절에서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자신에게는 힘만 들고 오직 하나님만 기쁘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읽은 39절에는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고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길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은 우리에게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36절부터 44절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하는데 내가라는 말을 여러번 반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본문에 복 주시겠다고 여러번 말씀하고 있는 사실을 볼 수 있는데 우리 그곳만 찾아 읽게 보겠습니다.

40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절입니다.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4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하나님을 돌아 온 백성에게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42절을 보면 허락한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하고 있는 것에 주목 합시다.

 

여기서 허락한 모든 복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복은 무엇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언제나 복인 것은 아닙니다. 성공이 복이긴 하나 때론 그것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이도 있습니다. 재물이 많은 것은 분명이 복이나 그것이 그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것을 막고 있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가족 간에 화목은 분명히 복이나 그 화목함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게 하는 일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325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라고 말입니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고 하고 있는데 그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장 존귀한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하였고

 

빌립보서 37절부터 9절에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리스도가 허락하신 모든 복의 핵심일까요? 그것은 그분을 통해 약속하신 새 언약 때문입니다. 율법의 두 돌 판은 폐하여 졌고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언약, 돌에 새겨진 율법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언약이 우리에게 주어져 생명 얻게 하신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언약을 통해 우리가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언약을 통해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복인 것입니다.

 

이 언약을 세우시면서 본문 41절 말씀처럼 마음과 정성을 다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하늘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하게 오셔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맺은 언약인 것입니다.

 

이렇게 복 주신 주의 백성들에게 결과적으로 주시는 복을 상징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4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이 땅에서 밭을 사겠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이 땅은 어디일까요? 본문에는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던 땅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심판받았던 땅입니다. 사탄이 세력을 잡고 있는 땅입니다. 에베소서 22절은 사탄을 공중권세 잡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땅의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람들의 삶을 사탄이 주장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미혹당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죄를 짓고 힘들어 하기도 하던 땅, 그 땅을 다시 사겠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땅을 산다는 것은 영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겼던 우리의 삶을 찾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재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영혼들을 찾아내 그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심어 주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밭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심어주셨습니다. 뽑히거나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28절에서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유업으로 얻은 우리는 이제 죄로 인해 사탄에게 포로 되어 살아가는 자들을 건져내고 그들이 잃어버렸던 하늘나라라는 땅을 다시 살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오게 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며 한마음과 한길을 주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며 복을 받고 살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를 통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죄로 잃어버렸던 밭을 사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잊지 않고 살며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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