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한 말씀

예레미야 2333-40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 21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잘 못 가르치면 그에게서 배운 자들은 모두 잘못된 길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선생이어야 할 자들이 선생이 되지 못한 것으로 인해 발생된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며 선생 된 자들을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백성이 잘 못 된 것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잘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이 잘 못 된 것은 그 지도자들을 바르게 가르쳐 야 할 선지자들의 잘 못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들을 가르치지 않아 지도자들이 부패했고 지도자들이 부패하니 백성들이 방종한 것입니다.

 

21장이 시드기야 왕에 대한 책망과 예언이었다면 22장은 그 앞에 있었던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왕에 대한 심판예언이었습니다. 이렇게 왕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곧 이어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잘 못 가르친 선지자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선지자에 대한 개념부터 잡고 가야 합니다. 요즘 종종 자신을 선지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사도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든 권위를 가지고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사람들도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선지자도 제사장도 사도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단지 선지자직, 제사장직, 사도직이 있을 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는 자였기에 이 시대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선지자입니다.

 

또한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표하고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역할을 했던 사람인데 이 시대 제사장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자신과 이웃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또한 사도는 예수님께 직접 배우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이적을 행하는 자여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없습니다. 단지 사도성이 있을 뿐입니다. 사도직, 또는 사도성이란? 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의 의미처럼 보내심을 받은 자인 것입니다.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이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자들은 사도인 것입니다.

 

이 여러 직분 중에 세상으로 죄악을 멈추게 하고 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선지자의 사역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도리어 거짓 선지자 짓을 하여 그 백성으로 방종하게 한 선지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에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더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말을 믿게 했는데 이에 대해 주님은 엄중하게 책망하셨습니다.

 

36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오늘 우리가 읽은 2333절부터 40절까지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향해 거짓선지자 짓을 하면서 그 말을 믿게 하고 백성들을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움직이기 위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하며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그들에게 심판의 근거가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읽은 말씀에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했습니다. 말씀을 말씀으로 바르게 전한 것을 망령되이 사용했다는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들이 최소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전했다면 하나님의 분노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했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에도 자신들이 한 말을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전했던 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먼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것을 주된 본분으로 삼아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생각을 말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바라는 바를 예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6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같은 시대 말씀을 전했던 에스겔도 에스겔서 1317절에서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마음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에 근거하고, 자신의 욕심에 근거하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작년 12월에 12월 전쟁설을 퍼트리며 교계를 혼란스럽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홍혜선이란 여자가 북한 특수부대 100만 명이 땅굴을 통해 내려오고 북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등의 마음에서 지어낸 말로 교계를 흔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리석은 교인들은 주변에 전파하고 심지어 필리핀과 미국으로 피난 가기도 했습니다. 그 일이 불발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둥 예고했던 1214일 새벽 430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국가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어서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둥의 말을 하며 자신들 때문에 깨진 가정과 부끄러움을 당한 교계에 미안해하거나 회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홍혜선씨를 비롯하여 그 일에 동조한 많은 이들은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당시 상황에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 말도 안 되는 예언을 한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예언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17절을 읽겠습니다.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자들은 17절의 말씀처럼 행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멸시하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들의 죄를 지적해 주고 바르게 행하게 해야 함에도 그들의 죄를 지적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르지 않은 것을 보고 바르지 않다고 이야기 해 주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큰일을 겪게 됩니다. 마치 친구의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는 자녀에게 책망하지 않고 묵인하거나 칭찬을 한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한 것과 같습니다.

 

저수지 한쪽에서 물이 조금씩 새는 것을 보았음에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저수지는 반드시 터지고 큰 해를 당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주의 백성의 죄를 보고도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당장 그들로부터 얻을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바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망이 아닌 복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올 유익도 바라지만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보고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망할 길로 가는대도 막아서지 않습니다. 그 선지자는 그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백성을 그렇게 놓아두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4절과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이 간음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것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의 손을 더 강하에 하여 그들로 악에서 돌이킬 마음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소돔이 되고 그 주민은 고모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고통의 쑥을 먹고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시겠다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고 바르지 않은 성도의 삶에 대해 쉼 없이 지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끊임없이 들려지는 말씀의 소리를 듣고 죄에서 돌이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의 쑥과 독한 물을 마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 먹는 쑥과 독한 물을 그래도 나름 괜찮습니다. 바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 땅을 살다가 저 영원한 나라에서 쑥이 아닌 불에 들어가고 독한 물도 못 마시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많은 교인들이 무지하여 교회를 다니기만 할 뿐 진정한 구원의 교리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 받는대만 열심을 내다보니 어떻게 믿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강좌 하러 다니다 보면 교회 오래 다닌 사람인데도 막연한 믿음만 있을 뿐 구원받는 믿음이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선지자 된 사역자들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입니다.

 

기본도 안 가르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도 안 가르친 것입니다. 단지 정성을 다하면 복을 받고 교회생활 잘하고 봉사 잘하고 목사에게 충성하고 헌금 잘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쳤을 뿐 세상 속에서 성도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귀에 딱지가 생기게 가르치지 않은 탓입니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시키지 않아도 행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는 게을러도 거짓 선지자 짓을 할 때는 누구보다 빠릅니다.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행태와 무엇인가 자신에게 이로운 말이 나올까를 바라보고 머리를 드미는 성도들의 필요가 서로 맞아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우리가 성도로서 살아가기에 충분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욕심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음이 거짓 선지자들을 찾아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929절에서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쓸데없이 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머리를 드밀고 예언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직접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을 쫓아다니는 어리석음을 금하시기 바랍니다. 차라기 그 시간에 말씀을 한 장이라도 읽고 스스로 5분이라도 기도하십시오.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우매한 교인들이 이렇게 바르지 않은 것을 쫓아다니고 헛된 소리를 겁 없이 해대는 이유를 본문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22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마음대로 말하며 겁 없이 거짓선지자 짓을 행한 이유를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이라고 두 번이나 안타까움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회의에 어떻게 참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말씀과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확신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기도만 있을 뿐 말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말씀이 풍성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거짓 선지자 짓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는데 자신의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장이 주제하는 회의에 참여한 사람은 사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의 말을 직접이든 간접적으로든지 듣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사장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결국은 일을 그르치거나 사장의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 짓을 하지도 않고 그들의 말에 조금도 영향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는데도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강하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거짓 선지자들의 가장 강력한 해악은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할까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잊게 한답니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히 이름이 아닙니다. 여호와 자체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빠진 사람은 바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공격하고 말씀을 강조하는 이들을 성령이 없다고 말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힘이 들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기꺼이 고난도 받아야 하지만 거짓 선지자의 예언은 달콤하기 그지없고 주의 뜻대로 살기 위해 인내하거나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예언은 언제든지 게으르고 죄악 된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거짓 예언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삶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아주 힘들어 합니다.

 

일명 신비주의에 깊게 빠진 사람은 후에 자신도 누군가에게 동일하게 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행위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이단을 또 다른 이단을 낫는 것입니다. 한국적 귀신론은 김기동에서 이재록으로 이재록에서 이초석으로 계보를 잇고 구원파는 권신찬에게서 유병언과 박옥수 이요한 등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누군가에게로 전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역들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막아버리고 자신들의 소리만 듣게 하여 결국은 하나님을 잊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강하게 말씀드리는 두 번째 이유는 30절 말씀 때문입니다.

3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앞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한다고 했다면 본 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도둑질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참선지자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취합하여 자신들의 말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말에 따르게 했습니다.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하고 도둑질하는 주된 요인으로 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읽었던 27절도 말했지만 그 말씀 앞뒤에서 여러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28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주님은 꿈을 겨로, 비유하고 말씀을 알곡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때 한국교회 청년들에 유행했던 말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다가 감동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했고 꿈을 꾸어도 그렇게 말했고 찬양하다 감동을 받아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그렇게 말할 때마다 꼬치꼬치 캐물었었습니다. “어떻게 말씀하셨느냐어떤 방식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무 때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꿈을 꾸었으면 꿈을 꾸었다고 하고 느꼈으면 느꼈다고 하고 감동 받았으면 감동 받았다고 하고 간혹 소리로 듣는 분들이 있기에 소리를 들었으면 들었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듣는 이들은 혼란스러워 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듣다보면 어느 순간 겨와 알곡을 구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읽었던 27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말함으로 자신이 듣는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월등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면 그 다음부터는 상대를 자신이 쥐고 흔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겨와 알곡을 구별 할 줄 아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겨와 알곡을 구별하여 듣고 겨와 알곡을 구별하여 말할 줄 아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과 인간의 생각과 바람을 구별할 줄 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심판을 예언하시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3절부터 40절까지 천천히 같이 읽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33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34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35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하고

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37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38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말씀을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니 너희는 말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39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40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란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오직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만을 전하고 듣는 은혜가 있어 이 혼탁한 시대에 옳은 신앙의 길을 가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바르게 전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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