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뿌리를 깊게 내리지 말라

15:1-9

 

어릴 적 겨울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칡뿌리를 깼던 기억이 있습니다. 먼저 언 땅을 곡괭이로 깨고 삽과 괭이로 줄기에 이어진 뿌리를 따라 파 들어갑니다. 때로는 혼자는 들 수 없을 정도의 돌도 캐내야했습니다. 삽질을 하다가 힘들면 다음 사람이 들어가고 또 그 사람이 힘들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 파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동네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알칡이라고 하는 칡을 캐게 되는데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칡뿌리를 캘 때 칡이 오래되면 될수록 캐기가 힘이 듭니다. 당연한 것은 그놈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중간에 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칡을 캐고 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온 몸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얼굴을 벌겋게 상기되었어도 그 칡을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오는 모습이 큰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의 당당함 같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연히 이스라엘의 죄를 뽑아냄으로 하나님도 이스라엘도 기쁜 일이 되지만 그 깊게 뿌리 내린 죄를 뽑아내기 위해 이스라엘에 주어진 고통은 너무나 아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죄의 뿌리가 깊이 내린 이스라엘의 상태와 그 결과에 대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고 나아가 죄의 뿌리가 깊이 내리기 전에, 아니 깊이 내렸어도 힘을 다해 뽑아내기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예레미야는 1419절부터 22절까지 민족을 대신하여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언약을 근거로 기근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716절에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고

1114절에서도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으며

1411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민족을 위하여 힘을 다해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고 심지어는 오늘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쫓아 내보내겠다고 하고 계십니다. 4절에서도 그들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고 하였고 9절에서도 그들을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쫓아 내버리겠다고 하시면서 주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쫓아 내버리실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절부터 3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주님은 백성들이 질문을 하는 형식을 빌려 그들을 어떻게 벌하실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라고 묻는다면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을 심판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하셨는데 그것은 죽음, , 기근, 포로 됨을 통해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를 같은 시대 말씀을 전했던 에스겔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서 5장에서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하시면서 머리털과 수염을 모두 깎아 3등분 하라고 하시고 3분의 1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3분의 1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3분의 1은 사방에 흩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칼과 포로 됨을 통해 심판하시라는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3절 말씀에서 네 가지로 심판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 , , 짐승입니다. 이를 현대어성경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는데 칼이 나가서 닥치는 사람마다 찔러 죽이면 개들이 그 모든 시체를 끌고 다닐 것이고, 그 썩은 시체는 공중의 새들과 야수들이 몰려들어 남김없이 삼켜 버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간절한 중보 기도도 듣지 않으실 뿐 아니라 아주 처참하게 이스라엘을 벌하시겠다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아니 왜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냉정하게 대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4절에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므낫세가 무슨 짓을 했기에 므낫세 때문이라고 하고 계신 것일까요? 므낫세 이전의 북이스라엘 왕들과 남유다 왕들의 죄를 지적하실 때는 여로보암의 죄라고 했는데 남유다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므낫세의 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므낫세의 죄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21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낫세의 죄를 크게 세 가지로 말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자신이 우상숭배를 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습니다.

왕하 213절부터 7절을 보면 그가 한 우상숭배와 패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므낫에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행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므낫세는 남유다 왕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우상을 숭배했던 자였습니다.

 

므낫세의 두 번째 죄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했던 것입니다.

왕하 219절을 보면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므낫세의 죄는 단지 므낫세의 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통치기간 55년 동안 자신만 우상을 숭배했던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므낫세의 가르침과 요구로 우상숭배와 패역한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 된 행위는 우리 자신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주변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의 목사들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들의 바르지 않은 신앙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인 저를 비롯하여 한 가정의 가장이나 한 집단의 장들은 거룩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므낫세의 세 번째 죄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왕하 2116절에서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본문에서 므낫세는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죄한 자의 피란 주를 경외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등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회개를 이야기하면 죽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므낫세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통나무의 속을 비운 후 이사야 선자를 넣어 톱으로 켜 죽였다고 합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통치 55년 뿐 아니라 그 후손들의 통치 기간 중에도 또한 요시야의 종교개혁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므낫세의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듣지 않는 자에게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당신을 반대하던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은 들은 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찔리는 심령,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삶을 살기 원하는 몸부림이 있는 자들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하기 전에 선지자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던 시기에 북이스라엘에는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가 일어났고 남유다가 멸망하던 때는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오바댜,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등의 선지자들이 일어나 외쳤습니다. 왜 그들은 이런 시기에 몰려 있던 것일까요? 그것은 망할 때가 되면 듣는 귀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욕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은 자신이 듣기에 좋은 말씀이건 그렇지 않은 말씀이건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죄악이 가득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에 주님도 그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났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주님은 이스라엘 향해 구원의 손길을 펴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손을 펴서 멸하였다고 하시며 그 이유를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정말 마음이 아프고 죄송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후에 광야를 비롯한 가나안 땅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배신의 역사였습니다. 자신들이 힘들고 아쉬울 때는 하나님을 찾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고 그들이 돌이킬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이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돌이키는 일에 지쳤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6절 초반에서도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났다고 말씀하심으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버림을 받고 있는 현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네가 나를 버렸다고 격렬하게 표현하심으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표현했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호르 텔레키라고 하는데 그 뜻은 네가 계속적으로 뒷걸음질 친다(타락해왔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물러감이 너무 멀리 갔기에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혔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죄의 영향 가운데 있었기에 어지간한 힘으로는 뽑아 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서 칡뿌리가 오래되면 뽑아내기에 너무 많은 힘이 든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들의 죄를 뽑아내고 새롭게 하기 위해 심판이라는 칼을 뺄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7절부터 9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심판하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절입니다.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모세와 사무엘이 있어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사무엘을 등장시키신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사무엘은 중보기도자의 대표입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뛰놀아서 주께서 진노하심으로 그들을 멸하려 하였으나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부터 사사기 내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겨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었으나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중보사역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이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다”(삼상12:23)고 했던 말입니다.

 

이 중보 기도자 둘이 모여 합심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계획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에스겔은 에스겔서 1420절에서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둘이 이러한 말씀을 선포한 시기가 같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계획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왜 하나님은 이토록 단호하고 냉정해 지신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죄가 뿌리를 너무 깊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그들의 죄를 뽑아낼 수 없었습니다. 어르고 달래서 죄에서 돌이키게 할 때가 지났습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녹슨 가마솥의 녹을 빼내기 위해 그 솥에 물을 붓고 고기를 오랫동안 삶아 내서 가마솥의 녹을 뽑아내듯이 예루살렘을 부수어 버리고 그 백성을 바벨론으로 끌로가 그 곳에서 가마솥에 고기를 삶아 녹을 빼내듯이 그들의 죄들을 뽑아내고 새로운 심령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24)

 

그래서 주님은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올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된 모습을 본서 247절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주변 사람 생각하지 마시고 자신의 속을 들여다봅시다. 여러분의 심령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의 사람이 맞습니까? 성도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죄의 뿌리가 점점 깊이 내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독에 까지 이른 죄는 없습니까?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까? 혹시 이성의 유혹에 못 이겨 주의 백성으로서는 행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성령께서 계속해서 지적하고 계심에도 못 들은 척하고 다음으로 미루는 죄들은 없습니까? 이 정도 쯤이야 라고 말하며 죄의 뿌리내림을 우습게 여기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평안하다고 내일도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셔서 당신이 아프지만 징계의 회초리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깨어있는 목사와 성도들만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교회를 향해 정신 차리라고 외쳐주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멸망의 시기에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과 같습니다. 지금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성경을 통하여 경고하시는 말씀은 경고에서 멈추는 것이라 실현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죄의 뿌리가 더 깊게 내리기 전에 그 싹을 뽑아내야 합니다. 이미 너무 많이 뿌리를 내려 힘들어도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쳐 복종시켜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죄에 대하여 죽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죄와 싸우고 결국에는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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