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하심

요한복음 151-11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말씀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집을 나서셨습니다. 아마도 길옆에 포도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의 포도나무를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오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로, 자신은 참포도나무로, 그리고 제자들은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시면서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는 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예수님은 당신이 잡히신 후에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정치적이고 영적인 박해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생각을 할지 아셨습니다. 이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갈 것이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박해로 인해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포도나무와 그를 기르는 농부의 관계를 통해 제자들과 성도들은 환란과 박해 속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먼저 주님은 당신을 가리켜 참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했습니다. 그 중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바램과 관계 되어 언급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께서 원하시던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없을 때 포도나무와 그 열매로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은 이사야서 52절인데 기록되기를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였지만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 보다는 죄의 열매를 맺어 울타리가 제하여져 들짐승에게 먹힘을 당하는 신세였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주님은 지금 당신을 가리켜 포도나무라고 하시면서 앞에 자를 더 붙여 참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신 이유는 이후에 계속해서 말씀하실 열매와 관계가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는 들포도를 맺었다면 당신은 참포도나무이기에 극상품포도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신을 가리켜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나는 ..이다라는 말을 통해 당신 자신에 대해 분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나는 ..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등으로 당신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셨는데 이를 신학적으로는 신적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계속해서 나타내심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시작하시면서 나는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하나님을 가리켜 농부라고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고 그 아버지는 농부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전능하신 농부이십니다. 바울도 하나님을 농부로 표현했는데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분파를 나누어 싸우고 있던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라고 함으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농부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농부, 전능한 농부이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농부십니다. 1절의 말씀처럼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과 완전하고 전능한 농부인 하나님 아버지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극상품포도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게 하실까요?

2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지혜롭고 부지런한 농부는 적절한 가지치기를 해주게 됩니다. 가지가 아깝다고 남겨주었다가는 그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지치기를 해 주지 않으면 대부분의 영양분이 여러 가지로 분산되어져 버리기 때문에 상품성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죽은 가지가 붙어있을 경우에는 나무에 병균이 생겨 나무 전체를 썩게 할 우려까지 있어서 반드시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온전하고 풍성한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병들거나 죽은 가지들을 비롯하여 열매 맺지 못하고 양분만을 빨아먹는 가지들을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란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까지 막아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전혀 맺지 않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날 주무셨던 베다니에서 새벽같이 나와 배가 고프시던 중에 무화과의 열매 없을 보고 저주하여 마르게 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종교적 열심은 가득하지만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찍어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있던 때에 당신 앞에 있던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을 가리키고 나아가 초대교회성도들과 현재 우리 주의 백성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버리고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를 통해서 있는 자는 더 있게 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킬 때는 약간의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열매 맺지 못한 가지를 제해 버리겠다는 말을 구원받았던 사람도 삶이 없으면 취소될 수 있다고 해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내면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해 버리는 것은 우리 속에서 날마다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죄와 그 죄성을 끊어주시는 주의 은혜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찍어 내십니다. 그 과정이 아프고 힘들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농부이신 하나님은 눈 딱 감고 우리들 속에 있는 죄들을 끊어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오래 된 습관처럼 자리 잡은 것들을 주께서 뽑아내심으로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끊어내야 하는 것들을 가리켜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대상이었던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박해와 공격으로 인해 생계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 기독교도였던 사람들이 다시 유대인 공동체로 돌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얽매이기 쉬운 것들은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에 해당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으면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주를 따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욕심이라고 말하며 그 욕심을 끊어야 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끊어야 함에도 우리의 연약과 세속화 된 우리의 본성으로 인해 끊지 못할 때 주께서 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하기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가지치기를 당한 성도들을 가리켜 본문 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이미 깨끗해 졌다고 선언적인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제자들을 깨끗케 한 도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제자들을 깨끗하게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으로 깨끗해 졌다고 하신 것은 그 말씀이 제자들에게 들려졌고 그 말씀으로 인해 제자들은 죄를 끊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2절과 13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하였고

 

디모데후서 316절과 17절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끊임없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17절 말씀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하여 항상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자신을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고 예수님을 참포도나무이시면서 좋은 열매 맺게 하기 위해 가지들을 정리하시고 깨끗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 은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더 깊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4절과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거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이나테라는 단어로 한번 내려진 결단을 계속적으로 이루어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시고 주님도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열매를 맺는 삶은 예수님 안에 계속해서 거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열매를 맺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치 봄마다 자리를 옮겨 심은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열매 맺을 만 하면 세상을 기웃거리고 자기 생각과 성질에 못 이겨 말씀에서 떠나는 사람은 열매를 온전히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나무가 옮겨 심겨진 후 제대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옮겨 심겨진 나무는 얼마 동안은 몸살을 앓고 그것을 견뎌 낸 후에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처럼 꾸준히 주님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건강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당연한 원리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양분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듯이 성도도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시면 제자들을 예수님이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환란으로 인해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으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당신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의 1차 대상이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들었을까요? 그리고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환란을 감내해야 했을까요? 그런 그들에게 어렵지만 떠나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생명을 공급받고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태풍에 가지가 마구 흔들리지만 그것이 힘들다고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곧 말라 죽음을 맞이하게 되듯이 예수님을 떠나는 자는 열매는커녕 죽음만이 있었기에 떠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6절은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싸움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유혹과 싸우고 환란과 싸우고 자신 속에 있는 죄와 싸우며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주님으로부터 양분을 공급받고 영적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 땅에서 성도의 싸움을 온전히 승리케 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아주 강력한 도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도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12절과 13절처럼 오해를 많이 일으킨 말씀 구절입니다.

그것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듯이 이 말씀을 우리의 욕심을 채우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면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면 이루어지겠다는 말씀은 지난주의 말씀처럼 한정된 말씀으로서 원하는 대로 구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고 떨어져 나가지 않는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새 계명을 지키는데 필요한 것을 무엇이나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 안에 거하여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새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8절부터 1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은 먼저 당신이 하나님 안에 어떻게 거하는 지에 대해 말씀해 주신 후에 당신처럼 당신의 백성들도 당신 안에 거하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 같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신 방법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으로 대변된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자고 하면 우리들은 힘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아직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데 가슴을 아직 강력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주차빌딩을 시작으로 한 유명한 건축 업자인 하형록이라는 사람은 잘나가던 젊은 날 갑자기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심장병이 생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사람은 두 번의 심장 수술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사업터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모토로 하여 끊임없이 베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11절에 있습니다.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이유가 당신의 기쁨 때문이 아니고 제자들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진정한 기쁨은 주님과 함께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요한 일서에서 새계명에 대해 아주 잘 기록해 놓았습니다.

요한은 요한 1서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함이고 그 사귐은 형제사랑으로 드러나는데 그 한계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 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과 연합했을 때 진정한 기쁨이 넘침을 아셨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이라고 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닥쳤던 위기를 암시하는데 그 속에서도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놀라운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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