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이신 예수님2

요한복음 1022-42

 

예수님은 수전절에 성전에 계셨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라 아주 추울 때였습니다. 이러한 때 예수님은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셨습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 주위를 둘러싸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더 이상 우리를 의혹하지 말고 분명히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당신이 온갖 가르침과 행하는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당신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나를 믿지 않았지만 내 양은 내 음성을 아는고로 나를 따르며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를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행하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세례 요한이 세례 주던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셨고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예수의 행하시는 일로 인하여 믿었다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지난주에 이어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본문 말씀을 보며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22절과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요한은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시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계셨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절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요한이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예수님과 수전절이 중요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수전절은 어떤 절기일까요?

 

수전절이란?

유대인들이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서 더럽혀졌던 성전을 되찾아서 다시 하나님께 바친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모세 율법을 통해 정해진 절기는 아니었지만, 마카비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유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지켜지는 명절입니다.

 

수전절은 헬라어로 재건이라는 뜻의 엔카이니아이며, 한자로는 닦을 수(), 대궐 전(殿), 마디 절()입니다. 그러니까 한자의 의미로 하면 성전을 깨끗하게 닦아낸 날을 기념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수전절을 히브리인들은 보통 하누카’(Hanukkah)라고 부르는데, 이는 봉헌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주전 586년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데 이어 차례로 페르시아와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제국은 넷으로 나뉘었는데, 유대인들은 그 중에서 먼저 지금의 이집트지역을 다스렸던 프톨레미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종교적으로는 비교적 독립적인 위치를 지킬 수 있었고, 대제사장은 유대인들의 실제적인 최고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프톨레미 왕조는 지금 시리아지역을 다스렸던 셀류쿠스 왕조와의 전투에서 패하자 유대인들은 주전 198년부터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셀류쿠스 왕조는 강력한 헬라화 정책을 폈는데, 그 중에서 주전 175년부터 안티오쿠스 4세의 통치시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은 극에 달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친 헬라파인 야손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는데, 야손은 사독 가문의 마지막 합법적인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의 동생으로, 안티오쿠스 4세 입장에서 헬라화 정책을 수행하기에 합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야손은 3년간 대제사장으로 있었는데, 그 동생 메넬라우스가 야손보다 은 300달란트를 더 바치겠다는 거짓말로 대제사장직을 차지했습니다. 메네라우스는 자기 백성의 살육을 충동질하고 심지어 안티오쿠스 4세가 지성소에 들어가 약탈을 자행할 때 그를 인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인 에피파네스는 다니엘 11장에 기록된 대로, 프톨레미왕조의 점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로마에 의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안티오쿠스 4세는 그 분을 풀 때가 필요했습니다. 이 때 유대에서 대제사장에서 밀려났던 야손이 안티오쿠스가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대제사장 메네라우스를 몰아내고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었었는데 에피파네스는 이를 자신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 유대를 공격하고 그 후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을 더 강화하였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주전 167년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였고, 성전의 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그것을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사신들을 예루살렘과 여러 도시에 보내어 할례 예식과 안식일 규례를 금하는 등의 칙령을 공포하였습니다. 심지어 왕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월 25일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 제단에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왕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온 몸이 불구가 되기도 했으며, 산채로 십자가에 매달리기도 했고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에피파네스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이 현현했다는 의미로,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이를 유대인들은 에피마네스’, ‘미친놈이라고 비꼬아 불렀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농락을 당하고 하나님이 모독을 당할 때 여호야립 반열의 제사장 맛다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39km 정도 떨어진 모데인지방에서 자기의 다섯 아들과 함께 이방 제단을 부수고 반란을 일으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독립국가 하스몬 왕가를 일으킨 유명한 마카비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 유다 마카비가 특히 그 용맹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별명인 '쇠망치'라는 뜻의 하 마카비에서 따와서 이 반란이 '마카비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산 속으로 들어간 맛다디아의 아들들과, 함께 한 많은 경건한 자들이 3년간의 전쟁 끝에 마침내 성전을 탈환하게 되었는데, 처참한 성전의 모습을 발견하고 유다 마카비와 군인들은 옷을 찢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제사장들을 세워서 성전을 정결케 했습니다. 우상의 제단을 헐어버리고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봉헌하고 무너진 곳을 수축하였습니다.

 

주전 164년 기슬르월 25(오늘날로 말하면 1225)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3년 전 기슬르월 25일에 빼앗겼던 성전이 정확하게 3년 후 같은 날에 새로 봉헌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정화한 다음 그들은 8일간의 성대한 봉헌 축제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누카수전절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축제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공적인 결의를 하여 포고령을 내리고 해마다 이 축제를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성전이시며 수전절의 주인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와 말기에 두 번에 걸쳐 성전을 정화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절기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셨다고 요한이 밝히고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분을 넘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계속해서 말씀하셨고 행동과 표적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신 것입니다.

 

이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쌌습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둘러싼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거나 수전절의 주인으로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위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에워싸고 마치 협박이라도 하듯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언제까지 우리를 의혹하게하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의혹하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이로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들어 올리다. 가지고 가다. 제거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마음을 흔들어만 놓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흥분시키기만 하지 말고 자신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임을 보여주어 자신들을 만족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진실을 믿기 위해서 그렇게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미리 단정 지어 놓고 주님으로부터 아니다라는 대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와 메시야이신 주님은 같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입관과 전통을 내려놓지 않으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을 흔들어만 놓지 말고 그리스도라면 밝히 말하라는 유대인들의 요구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25절부터 3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들을 행했고 그 일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은 증거하고 있음에도 너희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믿지 않았는데 이유를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4절에서 말씀하셨듯이 주인의 양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했고 5절에서는 주인의 음성이 아닐 때는 양들이 흩어진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주님의 양이 아님으로 믿지 않고 흩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당신의 양을 알고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게 된 것은 우리를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우리를 당신의 양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품에서 자랐고 그분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고 그분의 돌보심을 받았기에 주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당신의 양을 삼으신 자들에게는 영생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생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거저 받은 것이고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11, 15, 17, 18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듯이 당신의 목숨을 버리는 대가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영생은 헬라어로 조엔 아이오니온라고 하고 영어로는 “eternal life”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생이라는 말에는 본문에서도 말하듯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25절과 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라라고 한 것입니다. 생명을 얻은 자는 육신이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이면 한번 주의 은혜로 생명을 얻은 자는 그 생명이 죽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영생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는 로마서 831절부터 39절까지 환난도 박해도 기근도 적신도 위험도 칼도, 사망도, 천사들이나, 권세자나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당신의 양을 당신에게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강조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유대인들, 자칭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하고 하는 자들이 잘못된 가르침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백성들을 빼앗아가 자신들보다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당신의 양떼를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을 당시 수전절에 읽었던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성전에서 하신 말씀인데 유대인들은 수전절이 되면 에스겔서 34장을 읽었습니다.

 

에스겔 34장에는 자기 배만 채우느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략거리가 되게 한 거짓 목자들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의 지도자들에 대해 에스겔은 묘사하기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34:2-6) 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묘사했던 당시 지도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친히 목자가 되어 당신의 양떼를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의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 에스겔서 3411절부터 16절까지 말씀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낭독하던 수전절에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성전을 정화하는 존재이며 선한 목자라고 증언했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표면적 이유는 29절과 30절입니다.

29절과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다른 말씀들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죽이고 싶었지만 그것은 죽일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며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라고 하는 일에 대해 신성모독의 죄를 물어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굴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더 강한 논리로 말씀하셨습니다.

34절부터 36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예수님은 시편 826절의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라는 말씀을 인용하셔서 말씀이 속에 있는 자는 모두 신이라고 했다고 하심으로 당신 앞에 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신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당신을 죽이려는 것은 그들이 믿고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바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한 가지를 양보하시며 그들이 불신앙에서 벗어나 믿기를 원하셨습니다.37절과 3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들의 시각으로 내려가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죽이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본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신 예수님을 찾아 갔던 사람들의 반응을 본문은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으로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41절과 4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고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양이 아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어 예수님을 돌로 치려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정결케하는 자요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수전절에 또다시 성전 밖으로 쫓아내는 어리석음을 범함으로써, 그 절기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빼앗기지 않으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수전절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선한 목자로서 온전히 믿으며 그분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푸른 꼴을 풍성하게 먹고 그 분을 따르므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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