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61 - 71

 

예수님은 디베랴 바다 건너편 벳세다로 가셨습니다. 디베랴는 갈릴리바다의 왼쪽에 있고 벳세다는 오른편 위쪽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쳤던 표적을 보고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빌립은 각 사람이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하며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때 안드레가 어린아이의 도시락이었던 오병이어를 가지고 와서 얼마나 되겠느냐고 다시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떡을 가져다가 축사하시고 떼어 주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약에 예언되었던 선지자라고 하며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했으나 산으로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 후에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셨는데 이 때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표적이 말하고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 만족하여 계속해서 떡을 기대하던 그들을 향해 당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하고 자신을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고 떠나지 않은 제자들은 생명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는데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오늘 이 긴 본문을 통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이 후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후에5장에서 베데스다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 자신이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 하신 이후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상부의 벳세다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 때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가 따른 이유에 대해서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표적을 보고 예수님께 무리들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주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빌립은 말하기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그 당시 사람이 남자만 5천명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숫자에 들지 않은 여자와 아이까지 치면 2만 명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떡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의 이러한 대답은 극히 정상인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당하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의 생각과 경험의 한계 속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주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물은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왜 아시면서 물으신 것일까요? 빌립을 망신주시기 위해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빌립으로 하여금 우리의 모두의 생각을 대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에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로부터 얻은 도시락을 받아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오병이어였습니다. 안드레는 아이로부터 받은 도시락을 가지고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9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빌립이 예수님께 질문을 받고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니다. 빌립은 그냥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면 안드레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가지고 주님 역사해 주십시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살 수 있기는커녕 있는 것이라고는 어린아이의 도시락 밖에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도 빌립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함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일 방법이 없다고 못 박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빌립의 믿음이나 안드레의 믿음이나 이 많은 사람들에게 떡을 구해다가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인생에서 완전한 절망이 있습니다. 인생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것에도 절망이 있지만 특별히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있어서 완전한 절망인 것입니다.

 

벳세다 광야에 모인 수많은 무리들이 자신의 육신을 채울 떡을 구할 수 없었듯이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듯이 우리의 영혼의 필요를 스스로는 채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 누구도 채워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의나 공로로 자신을 심판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또 어떤 이는 종교적으로 훌륭하게 선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해 줄 있다고 착각하며 그에게 은혜를 구합니다.

 

로마 가톨릭의 신앙이 이러한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공로를 의지하여 구원얻는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나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또한 성인이라고 추대된 사람들이 천국에서 남은 공로를 자신에게 주면 그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나, 그들이 추대한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에게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란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시고 그 결과 나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공로에는 단 1%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분이 주님이시기에 당신께서 우리에게 떡을 주시는 분임을 본문에서 표적을 통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0절부터 13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주님은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주실 때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원대로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배가 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대로 주어 배부르게 해주었음에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원하는 대로, 배부르게, 열두 바구니가 의미하는 바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떡을 주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금 부족하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필요한 만큼 주셨다고 했는데 이는 각 영혼들마다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다릅니다. 어떤 이는 험악하게 살았었고 어떤 이는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으며 살았던 이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한 만큼 넘치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열두 바구니가 남을 만큼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단들이나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유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공로를 말하고 행위를 말하는 모든 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이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1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에는 병자가 치유되는 것을 보았고 현재는 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워주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표적을 본 이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했음에도 주님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세 가지 시험을 할 때 그 중의 하나가 내게 절하면 만국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주님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본문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그 영광을 깔고 앉아 즐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 땅의 임금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도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들의 반응과 동일하게 반응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땅의 떡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 복을 주셔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성도들의 간증은 이 땅의 것을 채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그것은 표적이었을 뿐인데 그것 자체만을 추구하며 예수님을 따르니 예수님은 산으로 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후에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이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찾아온 그들의 목적은 조금 전에 말씀 드렸듯이 떡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26절과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에 나를 찾은 것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이 이해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썩을 양식은 당연히 이 땅의 떡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당장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떡은 인자이신 당신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주님은 2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위하여 공로를 쌓거나 헌금을 많이 하거나 단 하나의 죄도 범하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단 하나,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그것만이 영생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위가 없어도 된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에게 드러나는 열매인 것입니다. 그 열매도 절로 맺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들에게는 절로 과실을 맺는다는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의 증거가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행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따르는 표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것이 영생을 위하여 하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다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30절과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따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더 가관인 것은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언급하며 그에 합당한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떡을 배부르게 먹었던 그들이 다시 더 큰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마태복음 163절에서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아무리 많은 표적을 보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에 당신이 보일 표적인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나는 표적인데 이것도 믿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표적을 보면서도 당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이 너희가 찾는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으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믿지 않는 그들을 향해 왜 믿지 않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주신 자는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6-40).

 

이렇게 여러 말씀을 하시고 사람들이 받아 드릴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47절부터 51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것은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떡, 즉 당신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셨고 그 떡을 더 구체화하기를 당신의 살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야 이해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의 살을 먹으라는 말은 정신병자의 말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서로 다투며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군중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좀 더 설명해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주님은 한 술 더 떠서 말씀하셨습니다.

 

53절부터 5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도 이해 할 수 없어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제는 피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당신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당신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만나를 언급하셨고 조상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어지만 나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을 떠나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이 땅을 떡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떡이 풍성해지는 말씀을 좋아하고 이 땅의 떡을 모으고 그 떡으로 배부른 방법을 교회 내에서 추구합니다. 만약 그것에 대해 채워주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일, 즉 예수님의 사셨던 방법을 말하고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가라고 하면 더 이상 그곳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두 떠나 갈 때 주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아주 중요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68절과 6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베드로의 이 대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드로의 입을 통해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나아가 그 말씀으로 배부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떡이십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기도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 오병이어같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닌 것입니다.

 

어리석고 세속적인 인생들은 떡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의 떡을 주시는 것으로 진정한 떡에 대해 알게 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보게 하기 위해 주님은 이 땅의 떡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생들은 떡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그림자인 이 땅의 떡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회의 아픔이고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고 그 떡을 알고 먹게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인 것을 알려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께 주신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생명을 소유하게 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말씀을 더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양식을 공급받고 더 받게 되며 영혼이 성장하고 더욱 건강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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