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것은 악한 것입니다.
오늘 고향친구의 죽음 소식을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 중 하나는 몇 년 전 폐암으로 죽었고, 중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 하나도 암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제 조금씩 친구들이 이 땅을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지지만 오늘 들은 친구의 사망 소식은 저를 울게 하고 안타깝게 했습니다.
어릴 적 동네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던 친구였습니다. 저도 그 친구한데 맞았던 적도 있고 고등학교 시절 방황할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못 만났던 친구를 폐암으로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어릴 절 저를 때렸다가 우리 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도 나고 함께 못된 짓 하던 생각도 났는지 제가 목사가 되었다는 예길 듣고는 네가 목사가 되었느냐고 놀렸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어릴 적에는 동네에 안 때린 애가 없었고 청소년기에는 동네문제아로 지내다가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농약을 마셔 위세척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졌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던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예기도 꺼내고 예수님 예기도 꺼냈지만 그 날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그 친구를 위해 매일 기도했고 종종 전화로 통화하면서 만나서 복음 전할 기회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동창회로부터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자를 받자마자 문자를 보낸 친구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왜 죽었느냐고? 그놈은 왜 나를 기다려 주지도 않고 그렇게 서둘러 갔느냐고 울먹이며 예기 했습니다. 그러는 내내 제가 미웠습니다. 언제 시골에 갈 일 있으면 그 때 만나서 복음 전해야지 하며 미루었던 게으른 제가 미웠습니다. 제가 전한 복음 듣지 못하여 구원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죽은 친구에게 미안했습니다. 어릴 적 같이 어울렸던 놈이 목사가 되었다고 놀라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친구에게 제대로 된 복음 한번 전하지 못한 제가 너무 미웠습니다.
게으른 것은 죄입니다. 특별히 영혼을 향한 게으름은 죄입니다. 옛말에 “子慾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지)” “자식은 효도를 하려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친구도 그랬습니다. 제가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고향 친구들 중 유일하다시피 마음에 품고 기도하던 친구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한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후회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흘리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눈물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음 주실 때 상황과 형편을 핑계하지 않고 언제나 움직이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