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아강해)예레미아 42장 18~22절(마음을 속이지 말라)-하림교회 황규관 목사

 

 


 

 


마음을 속이지 말라

4218-22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망하고 그 수도였던 예루살렘도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왕과 고관들도 도망가다가 잡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망한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총독제로 다스려지게 됩니다. 이렇게 총독이 나라를 다스리며 안정되는듯하던 때 벌어졌던 사건과 그 후에 벌어진 일을 40장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좀 많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4010절부터 1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도 바벨론의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을 위하여 세웠다 함을 듣고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

 

총독으로 임명 된 그다랴는 바벨론이 남겨 두고 간 빈민들과 몇 귀족들에게 불안해하지 말고 포도주와 여름과일을 모으며 살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유다 주변의 나라에 흩어졌던 백성들과 숨어있던 군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삶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평화를 그들 스스로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을 좋은 무화과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에 비유하셨었습니다.(24) 오늘 본문은 그들이 왜 나쁜 무화과인지 보여줍니다. 환란의 시기였음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돌이켜 금식하며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죽이려하고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40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총독 그다랴의 신하 요하난과 들에 있던 지휘관들이 암몬의 왕 바알리스의 사주를 받은 유대 왕족 이스마엘이라는 자가 그달랴를 죽이려한다는 정보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곧 그다랴에게 가서 이스마엘을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그다랴는 그 말을 믿지 않는 모습을 16절에서 보게 됩니다.

 

411절부터 3절도 읽겠습니다.

일곱째 달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은 그다랴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스마엘과 그 일행들과 함께 식사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렇게 식사를 했다는 말은 경계심을 갖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이스마엘에게 상당한 지위를 준 것을 의미한다고 주석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렇게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푼 그다랴 총독을 그들은 칼로 죽이고 그곳에 있던 모든 신하와 갈대아 군대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던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였습니다. 그들은 위기의 때에 백성들을 돌보거나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야욕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그 결과 바벨론의 화를 당하게 되는 결과는 불러오는 자들이었습니다. 에스겔이 몸의 털을 밀어 3등분하고 그 중에 맨 마지막을 조금 취하여 주머니에 넣었다가 태워버리는 행동으로 예언했던 바를 그들 스스로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강퍅함은 어디까지일까요? 인간의 영적인 눈은 왜 그리도 뜨기 힘든 것일까요? 이제 깨달을 때도 되고 닫혔던 눈을 뜰 때도 되었는데 그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지 돌아봅시다. 우리들의 영적 감각은 예민한지, 우리들의 영안은 열려 있어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유다의 행동이 있습니다.

41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

 

총독 그다랴를 죽인 이스마엘과 그 일당들은 남은 백성들을 끌고 암몬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암몬으로 가려고 한 것은 이스마엘이 암몬의 사주를 받아 이 일을 진행했을 뿐 아니라 암몬은 아직 바벨론에 점령당하기 전이었고 바벨론을 대항하여 연합한 나라들이 건재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암몬은 피난처였고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워 줄 수 있다고 여겨진 곳이었습니다.

 

이어서 4116절과 17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그달랴를 죽이고 남은 사람들을 끌고 암몬으로 가던 이스마엘을 요하난이 추격하여 잡았습니다. 그 때 이스마엘과 그 일당 여덟 명은 암몬으로 도망갔습니다. 이제 이스마엘은 그들을 데리고 총독부가 있었던 미스바로 가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요하난은 그들을 끌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멈춘 곳은 미스바로부터 약 10km 떨어진 베들레헴에 멈추었습니다. 그들이 미스바로 가지 않은 이유를 18절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바벨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총독이 암살 된 후에 두 부류가 가려던 방향을 보았습니다. 먼저 이스마엘은 암몬이었고 요하난은 애굽이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언제나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성으로는 알았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들을 도와주고 보호 해 줄 나라로 암몬과 애굽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애굽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었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으로 가려던 히스기야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명하셨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애굽으로 가는 행위의 이유는 애굽의 힘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 대해 성경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그의 책 307절에서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했고 311절과 2절에서는 도움을 구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애굽이 상징하는 세상으로 다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굽으로 가는 자는 마치 소돔이 멸망당할 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같은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으로 가려던 요하난은 무리 속에 함께 끌려왔던 예레미야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422절과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들은 예레미야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가 보았듯이 애굽으로 가려고 베들레헴까지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들이었지만 그들 속에 남아있는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불확실성이란 미스바로 돌아가야 좋을지, 애굽으로 가야 좋을지 확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그들이 예레미야가 받을 응답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그들은 예레미야가 응답을 받은대로 행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말에 확실함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들은 평소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듣겠다는 뜻으로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강한 의지를 표현합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그들은 자신이 생각에 좋든지 좋지 않든지 막론하고 순종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이렇게 행해야 된다는 이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기도해 달라고 할 때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바람에 부합하지 않아도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렇게 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고백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예레미야는 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열흘 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랫동안 응답하지 않으신 이유는 예레미야가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세를 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숨어 있는 동안 미스바에서는 대량학살이 벌어졌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세운 총독이 암살을 당하고 바벨론 군대가 죽은 것으로 인해 보복 차원에서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미스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숨어있던 요하난과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난 후에 주어진 응답이었습니다. 대량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 주어진 응답은 미스바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응답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가증시킬 뿐 전혀 평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유도 묻지 않고 죽이는 곳으로 자신들을 가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흘이 지난 후에 응답하신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라고 다짐했던 그 다짐이 진심인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평안할 때 가라고 한다면 안 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상황으로 응답을 받았기에 그들은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스바로 돌아가라고 할 때 그냥 가라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도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10절과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미스바로 돌아가면 세워주시고 헐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애굽으로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될지도 말씀하셨습니다.

13절과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열흘을 기다렸다가 응답을 주신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경고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라고 말입니다.

 

이 후에도 계속되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항상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사야서 558절과 9절에서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생각에 근거한 자신의 판단과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생각한 것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은 자신들이 어찌할지 몰라서 부탁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행동에 지지를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레미야를 거짓말한다고 몰아 붙였습니다.

43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의지가 조금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듣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거짓말 한다고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고 예레미야를 끌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런 그들의 행동을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422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만 신앙 있는 척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하나님 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짓된 마음을 신앙적 위선으로 감추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은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고 그들의 행동을 위선이라고 정의했으며 그들의 가르침은 바리새인의 누룩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을 소홀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자신의 육적인 것을 채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방도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신앙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남은 자들을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에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제목은 마음을 속이지 말라입니다. 오늘 본문도 너희 마음을 속였다고 하며 오늘의 말씀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속인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몸은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은 다른 곳을 배회하고 있다면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헌금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행동도 일삼습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38절에서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 했다고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 가운데 그렇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또한 속으로는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사랑노래를 부름으로 마음을 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을 말합니다. 하지만 속에는 무시하며 칼을 갈고 미워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우리의 마음을 속이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척 하는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라고 말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성도들의 기도 요청이 많습니다. 목회자는 당연히 기도하고 바른 말을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조언을 따르는 자는 극히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미 마음의 결심을 하고 왔기에 어떤 말에도 따르지 않습니다. 기도를 요청하는 이유는 자신의 욕심을 지지해 주길 바랄 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오늘 말씀으로 하면 마음을 속이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가 44장까지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 4430절 한 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자신의 잔꾀로 잠시 피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으로 잠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서 1710절에서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혹시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여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꺼이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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