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장 1-16절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첫 번째 갇혔을 때 기록한 네 개의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이 네 개의 성경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들을 가리켜 옥중서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성경들 중에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교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주제이고 골로새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주제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 에베소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으르렁 거리던 사람들이 화해하고 한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남북, 동서로 나누어진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한마음, 한나라가 되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인종과 신분과 나이를 떠나 예수님을 통해 성도로 부름받아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행복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전이 되고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교회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인 습관적로 ‘하나 됩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바른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 됩시다.’는 말은 성도들 사이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성도들은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할 일은 그것을 지키는 일인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가 된 것은 이미 과거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한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심령에 거하시지만 그분은 한분입니다.
그래서 4절부터 6절까지 말씀에서 모두가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부터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들에게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이유는 바로 몸이 하나며 성령도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한 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된 것은 결코 나뉠 수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 첫 번째가 바로 분열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견대로 교회를 나누었습니다.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누어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이 나누어 진적이 없음에도 나뉘었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기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 말씀은 성도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힌다는 말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누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나누고 찢고 교회 내에서 파당을 나누어 싸우는 모든 행위를 책망하면서 무서운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의 분열은 사탄에게 교회를 무너뜨릴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며 어떤 유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지 않고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평안의 매는 줄’이라고 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공동체에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견의 차이로, 성경의 차이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도 평안으로 서로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렇게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1절과 2절에서 하신 말씀이 전제됩니다.
1절과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1,2)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입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다른 들보를 하나 더 세워'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기억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한 말씀이 모든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평안의 매는 줄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묶어주신 그 끈을 끊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힘써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순간 곧바로 한 성령 안에 거하게 되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과 15절은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5:14,15)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도 간에 하나가 되는 법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래 참는 것’과 ‘항상 선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래 참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르지 않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신자나 나름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연약하고 바르지 못한 사람을 용납하는 일에 약합니다. 그 이유는 그 기준이 자신이고 예전의 바르지 못했던 자신을 용납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한 것은 성도와의 관계에서 악한 일을 당했거나 손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항상 선을 따라 행함으로 주께서 하나 되게 해주신 것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 간에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해야 하는 것이 성도에게 마땅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의무란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셨고 그 빚을 형제들에게 갚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 되게 하시면서 우리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11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하나님은 당신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12절과 13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여 오늘 본문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4절부터 20절에서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한 몸의 지체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눈으로, 누군가는 손으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장기의 역할을 하는 이로 교회를 섬기며 세워가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체 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1절부터 27절에서는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림교회가 13주년 감사 예배를 드리는 오늘 우리 중 누구도 힘을 다하지 않은 성도가 없습니다. 나름의 힘을 다했고 역할을 해 주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보이게 누군가는 보이지 않게 누군가는 오른손의 역할을 누군가는 새끼발가락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교회는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군가가 없기를 바라거나 나 하나쯤이야 는 생각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거나 행동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림교회는 우리 모두가 있어야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12절은 말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각 지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주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또 다른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당장 어떤 것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욕심대로 무엇인가 되지 않아도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가꾸고 주님은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중소형 교회의 성도들이 자주 지칩니다. 정체된 것 같아 지치고,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보이지 않아 지치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지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심어야 하고 누군가는 가꾸어야 하고 누군가는 거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삶과 사역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성도를 부르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도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이라고 말해서 우리의 믿음과 지식이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지식이 자라야 한다는 말은 우리의 믿음이 올바른 지식에 근거하여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장은 했는데 바른 지식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지식은 많은데 성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모두 이상한 것입니다. 믿음이 바른 지식위에 세워졌는지 점검해야 하며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자신이 가진 지식이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성장이 믿음과 지식이 없이 성장하는 것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되는 것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가 강한 태양 아래 나오면 타 죽듯이 바른 지식 위에 세워지지 않은 믿음은 환란이 오면 곧바로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 자체만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외적 성장입니다. 교회성장 세미나나 교회건축 세미나 등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한국교회는 외적 성장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구했던 외적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붕괴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믿는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서 그 말씀을 자신의 신앙의 기본으로 삼는 일에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자라가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게 됩니다. 이는 다음 절에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한다는 말과 대조됩니다.
신앙적 어린아이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어린아이 믿음이 아니라 부정적인 어린아이의 믿음입니다. 바르지 않은 가르침에 넘어가고 교계에 벌어지는 일이 말씀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의 성도입니다. 사탕으로 유혹하면 따라가는 아이처럼 세속의 유혹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 본문의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기에 15절에서 말하기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성도와 교회가 성장하는 수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된 것을 하여’라는 말은 헬라어로 ‘알레듀온테스’라고 합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진리를 말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진리를 말하고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성도와 교회를 성장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우리교회 성도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와 여러분이 많은 부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계속해서 자라고 있는 것으로 인해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리의 선포가 사랑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무리 바른 말이라고 해도 미움이나 시기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하기에 진리를 선포하고 그 말씀을 받음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라는 데 있어서 중요한 원리가 본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머리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읽은 15절 후반에 ‘그는 머리는 곧 그리스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원리에 입각하여 기록한 말씀이 1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머리를 통해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기록한 골로새서는 이 원리를 더욱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2:10)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천사숭배, 절기, 먹고 마심, 안식일, 고행”등의 바르지 않은 것을 지켜 신앙생활하는 그들에게 그 바르지 않은 것들을 통해 신앙생활하지 말라고 하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록되기를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라”(골2:29)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제일 원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배우고 그것을 지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머리를 붙들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교회가 그리스도가 없거나 그리스도 이외의 것이 들어온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세속의 가치관과 싸우고 가면을 쓴 거짓 복음과 싸우고 편협하다는 말을 듣지만 진리가 아닌 것과는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순수성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만을 붙드느냐 아니면 다른 것도 함께 붙들고 있느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교회설립 13주년 감사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오래 된 것도 자랑이 아닙니다. 외형적 성장을 이룬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에 근거해 바르게 자라고 있느냐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을 다해 지켰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하며 또 다른 성도들이 우리 안에서 태어나 주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일을 바르게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