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말렉을 진멸하라
신명기 25장 17-19절
이 말씀은 2001년에 했던 말씀의 본문과 제목입니다. 이 시대 주의 백성들의 무능력을 보며 이 말씀이 다시 필요 할 때라 여겨 이 본문으로 다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나쁜 습관 중의 하나는 미루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바르지 않은 행동이나 삶의 자세를 미루는 행위입니다. 다음부터 잘하지, 오늘만 하고 낼부터는 안 할래 등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의 싹과 완전히 잘라내지 못한 나쁜 행실들로 인해 곤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또는 그런 것들로 인해 사탄에게 시험의 빌미를 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보며 하나님 안에서 옳지 못한 것들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러한 것들을 완전히 없애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결심은 차츰 약해지고, 주변의 신앙인들도 여전히 믿기 전의 삶을 소유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의 죄에 대한 예민함을 잃어버리고, 죄를 범하는데 있어서 담대한 신앙인이 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담대함은 곧 자신을 어렵게 만들고 멸망의 자리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뒤 늦게나 발견하고 후회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는 바로 그렇습니다. 그 죄의 싹을 완전히 잘라내지 못하고 이정도 쯤이야 하고 남겨두면 그것이 언젠가는 장성하여 우리를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들 중에 음행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을 용납하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속성과 죄가 주는 달콤함을 즐거워하는 본성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을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적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제목이 “다시 아말렉을 진멸하라”라는 제목입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으니 먼저 아말렉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말렉 족속도 아브라함의 후손 중 하나입니다.
창세기 36장 12절에 보면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말렉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에서, 그리고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 엘리바스의 아들 아말렉이라는 계보를 가진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말렉 족속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출애굽기 17장에서 부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직후였습니다. 그들은 마실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정신없이 나온터라 조직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오합지졸의 무리였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들은 전쟁을 해 본적도 없고 농사와 목축 그리고 노예 생활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들은 오랜 행군으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무 원한도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말렉 사람들이 공격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공격은 참으로 야비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정면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행군대열의 뒤에 쳐진 노인과 여인들을 포함한 약자들을 공격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에서 모세는 손을 들고 기도하고 종국에는 이스라엘이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출애굽기 17장 16절에서 맹세를 하십니다.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본문 신명기 25장 17절부터 19절에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신세대 이스라엘에게 각인 시키시며 또 한번 명령하십니다. 같이 읽읍시다.
“[신] 25: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신] 25: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25: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이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각각 지파마다 땅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명령을 온전히 수행할 힘이 아직은 없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 힘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과 아말렉과의 갈등이 여러 번 나옵니다(삿6장).
그 중의 한번이 기드온의 때였습니다. 이 아말렉 족속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종할 때가 되면 항상 미디안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 그리고 동방사람들이 올라와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치고 올라간 곳이 어딘지를 아십니까? 이 남방 사람들이 올라간 곳은 이스라엘의 남부 유다지파도 아니었습니다. 그 곳은 이스라엘의 중북부인 므낫세 지파의 땅이었습니다. 이렇게 남방 사람들이 자기 집 드나들 듯 이스라엘을 우롱하던 무능한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기드온과 삼백용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사람들로부터 건지십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졌고 하나님은 이 명령을 사울에게 다시 하십니다.
사무엘상 15장 2절과 3절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15: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은 이 명령을 듣고 곧 나가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멸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과 그의 백성은 노략물을 탈취하기에만 급급하여 아말렉 사람을 모두 진멸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썩어질 유익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주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버리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기십니다. 사무엘상15장 22절과 2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살아남은 아말렉은 그 후로도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힙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머물던 시글락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잡아갔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있는 중에도 이스라엘의 대적 원수로 존재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에스더 서를 잘 압니다. 그런데 그 말씀 속의 가해자 하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군 줄 아십니까? 그가 바로 아말렉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조상들의 평생의 원수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계획을 바꾸어 그 자신이 자기가 세워둔 장대위에 달려 죽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말렉의 이 끊어지지 않는 악연을 보셨습니다. 이 악연은 단지 육적 이스라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 아말렉은 무엇입니까? 진멸해야 함에도 진멸하지 못하고 여러분 속에 남겨둔 것은 무엇입니까?
진멸해야 함에도 여러분의 삶의 영역 속에 여전히 동거하게 하고 완전히 몰아내지 않고 있는 아말렉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이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기까지 몇 가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첫째 어려움은 우리의 육적 욕심이 그 아말렉을 진멸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생명 있는 가축과 여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시지만 그는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겨 놓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핑계는 그를 너무나도 잘 드러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겨놓고서도 그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댑니다.
성도 여러분 사울은 이때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라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 일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 사람으로 살기위해서는 불필요한 것들을 끊으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위해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영적인 생활들을 육적인 쾌락과 게으름으로 인해 그 일들을 행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주님께 한 부자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주님께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청년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청년을 사랑하사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가서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에게 있어 아말렉은 무엇이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을 사랑하는 육적인 욕심이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나라 사람으로 살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라 보시고 그것을 진멸하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온갖 시험과 올무에 걸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는 재물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것들입니다. 더 높이 오르려하고, 더 많이 모으려하고, 더 오래 누리려고 하는 인간의 탐욕을 말합니다. 이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시험과 올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살기에 방해가 되는 육적 욕심을 진멸하십시오. 그래야 그것으로부터 오는 시험과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둘째 어려움은 우리의 무능력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진멸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인해 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 속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방해를 하는 아말렉을 진멸하고 싶지만 우리의 의지와 힘이 부족하여 그것들에게 끌려 다닐 때가 있습니다.
또 다시 마음먹고 다시 일어서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말렉에게 공격을 받고 넘어지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술과 담배를 끊고 싶어,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히 실패하는 우리자신의 무능력을 봅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음란물과 쾌락을 끊어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해 보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또 그것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 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봅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덕스럽지 못한 폭력과 거짓을 버리려고 여러 번 결심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부딪히면 언제 결심했었냐는 듯이 폭력적이 되고 거짓을 행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고 포기하시겠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한 가지가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라는 희망입니다.
그 은혜에 힙이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 우리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끊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계속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것들이 우리 속에서 사라지는 날을 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존경하는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거룩하고 영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우리와 성정이 같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이 아말렉을 진멸하기 위해 노력했고 기도함으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어려움은 아말렉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의 생명력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모세와의 전투 중에 모두 죽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 때 기드온을 통해 모두 죽었을 것 같았는데 그들은 여전히 살아서 사울의 때와 다윗의 때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이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시대에 바벨론에서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우리의 영적 아말렉도 이렇게 생명력이 질깁니다. 이제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못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어디에선가 다시 일어나 우리를 괴롭힙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줄로 압니다. 이전의 죄악 된 삶도 하루아침에 완전히 없어지는 줄 압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순식간에 새사람이 되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이 뭐 저래” “예수 믿는 사람이 더 나쁜 놈들이 많아” 라고 비아냥 거립니다.
여러분 만약에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믿는 순간 싸움도 갈등도 없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운 행실로 인해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전에 불조심 포스터에 있던 “꺼진 불도 다시보자” 라는 표어를 기억하십니까?
성도여러분 이제는 내속과 나의 삶의 영역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아말렉을 살아 숨 쉬는 동안 경계하십시오.
이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약해져있을 때 항상 공격했습니다.(출애굽 시, 기드온 때, 바벨론 포로 시)
그러나 이스라엘이 강할 때는 도리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습니다(사울의 때)
우리 영적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이 깨어있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때, 육신이 평안함으로 영혼이 나태해져 있을 때, 예배와 말씀생활에 실패할 때, 그리고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 때 우리 속 한쪽 구석에서 눌려있던 아말렉은 꿈틀거리고 일어나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아말렉은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 같은 사탄입니다. 이 사탄은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성이라는 불씨에 바람을 불어 우리의 영을 불태워 결국에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아말렉을 하루아침에 진멸하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 이 아말렉을 멸하려는 의지와 소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첫째는 육적욕심,
그리고 둘째는 우리의 무능력,
마지막 셋째는 아말렉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우리 속에 있는 아말렉을 진멸하여 하나님의 거룩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