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 당하신 어린양

예레미야 1118-2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언약을 상기시키며 그것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려는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지 말라고까지 하십니다. 이렇게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고향사람들인 아나돗 사람들에게 살해 위협을 당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1절부터 5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이르시되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말하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면서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에서 했던 언약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 언약은 본문의 말씀대로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라는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출애굽기 195절로 6절까지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5절로 6절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5절에서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에게 했던 약속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무엇이며, 그 핵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약하면 땅을 주리라, 자손을 주리라, 너를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이 일차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고, 그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만, 궁극적인 이루심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심은 그 자손이 태어날 땅을 예비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베드로는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3:25)고 하신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고 증거했으며, 사도 바울은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3:16) 하고 증거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하셨습니다. 이 언약을 히브리어로 베리트라고 합니다. 이는 히브리어 자르다라는 뜻의 바라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의미는 언약을 어기면 쪼개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서 계약, 또는 언약이라고 하는 말을 베리트라는 단어로 말하고 있다면 헬라어로는 두 가지로 단어로 구분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데케또 하나는 디아데케라는 말입니다.

 

먼저 신데케라는 말은 언약을 하는 당사자들이 수평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였습니다. 서로 합의하에 행하는 것입니다. “신데케는 계약을 하는 쌍방의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여 하는 계약입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이 한 언약(21:27)과 라반이 야곱과 맺는 언약(31:44)이었습니다.

 

또 다른 단어인 디아데케는 수직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언약관계로 양쪽 모두가 동일한 의무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인 의무와 책임을 지는 언약입니다. 그러니까 디아데케는 언약의 당사자 중 한편에게만 전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만이 결정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유언이나 서약과 같은 것입니다. 유언이나 서약은 그것을 하는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그것을 수정하거나 취소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누구도 강요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쪽은 그냥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의 개념을 구약에서는 베리트라는 단어 속에 모두 넣어 혼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인간과 언약하실 때부터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우리에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하면 신데케로 언약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상호간에 동일한 인격과 책임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서로가 행해야할 의무와 책임을 지고 언약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복 주시는 것으로 언약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행위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언약은 언약을 어긴 자에게는 베리트, 쪼개지는 형벌을 당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얻은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6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지키라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끊임없이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령하였어도 그들이 행하지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규정대로 그들에게 이루게 하였느니라 하라

 

이스라엘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끊임없이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하고 이스라엘은 끝까지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고 있던 때가 예레미야 때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주전 1446년에 애굽에서 끄집어내신 후부터 주전 600년경까지 약 800여년을 끌어 오셨습니다. 사실 이 불순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그들이 언약한 대로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9절부터 13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은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라고 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반역했다는 히브리어는 케세르입니다. 이 단어는 함께 매다, 묶다, 연합하다, 공모하다라는 뜻의 카샤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반역했다는 말은 공모, 동맹, 모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것도 서로 모의하고 동맹을 맺은 사이처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을 대항한 것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하나님을 대하여 역적모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역적모의를 하고 실천에 옮긴 것일까요? 그것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신, 다른 주, 다른 왕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환란을 주실 것인데 그들이 자신들이 섬겼던 신들에게 가서 빌고 구하나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12절에서는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라고 하셨고 17절에서는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셨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반역으로 인하여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다가 이를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반역함으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10)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언약을 이루리라(5) 하시는 그 언약을 이루지 못하도록 반역을 꾀하고 있는 사탄의 궤계에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구속사적으로 해석해 보면 그들이 역적모의를 한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대하여 반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김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 구속사역을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반역이 있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만, 메시아언약, 즉 하나님이 세워주실 을 반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10) 하고 그들이 메시아언약을 파하였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패역하여 하나님을 대항했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4절부터 17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은 악한 음모를 꾸미더니 나의 집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거룩한 제물 고기로 네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때에 네가 기뻐하겠느냐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바알에게 분향함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를 심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재앙을 선언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고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14)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이 이 심판을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절대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그들은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 하나님과 언약을 한 후의 상태처럼 그들은 언약을 어긴 것으로 인해 쪼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3418절부터 21절에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묘사하기를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에베소서 21절의 말씀을 빌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였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 아래 있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들 또한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떤 행위와 공로로도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18절과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들의 행위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 행위는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아나돗은 제사장의 성읍이요, 바로 예레미야의 고향(1:1)입니다. 제사장들이자, 고향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왜 죽이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것은 이미 예레미야를 부를 때 예고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8,19)라고 했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에게 동일하게 목숨을 위협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를 대할 때도 동일하게 대했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대하여 죽이려던 자들의 행위와 9절에서 반역이 있도다라고 했던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이렇게 살해 위협을 당하고 있는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무엇인가 의미 있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읽은 대로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의 은혜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당하는 선지자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데 이는 비단 예레미야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보다 앞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서 537절에서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되신 것입니다. 자신을 치고 자신을 희롱하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5장은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라고 하였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라 그 길을 가려는 자들에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8,19)라고 말입니다.

 

심판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재앙으로 그의 말을 듣고 복음 전하는 자들은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박해와 죽음을 감수하시며 생명을 복음을 전해주셔서 우리가 생명을 얻은 것처럼 우리들도 갈급한 심령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17
    May 2015
    16:02

    예레미야 16장 14-21절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By하림 Views2683 file
    Read More
  2. 13
    May 2015
    00:06

    예레미야 15장 1-9절 죄의 뿌리를 깊게 내리지 말라

    By하림 Views2541 file
    Read More
  3. 26
    Apr 2015
    19:08

    예레미야 14장 1-9절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By하림 Views2107 file
    Read More
  4. 19
    Apr 2015
    17:09

    예레미야 13장 1-11절 (교만하지 말라)

    By하림 Views3591 file
    Read More
  5. 12
    Apr 2015
    12:45

    예레미야 12장 5-6절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By하림 Views4878 file
    Read More
  6. 05
    Apr 2015
    12:21

    요한계시록 11장 11-12절 (부활 신앙)

    By하림 Views569 file
    Read More
  7. 29
    Mar 2015
    12:48

    스갸랴 9장 9절-17절 (크게 기뻐하라)

    By하림 Views2490 file
    Read More
  8. 22
    Mar 2015
    12:45

    예레미야 11장 18-23절 (죽임 당하신 어린양)

    By하림 Views1738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 68 Next
/ 68

Address: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77길 49 하림교회 (청담동 10번지)Tel: 02-456-3927Email: haezra@hanmail.net
Copyright 2000 스토리바이블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Nature w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