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으라

예레미야 175-11

 

예레미야는 1619절부터 20절에서 기도 중에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기도를 통하여 때가 되면 열방이 주께 돌아와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섬겼던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 것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임을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들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과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와 뿌리를 깊게 내린 죄악들을 지적하고 그 결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만이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1절과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1610절에서 하나님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선포하심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었습니다. 그러는 그들에게 주님은 그들의 죄악의 뿌리가 깊다고 먼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 뿌리 깊은 죄에 대해 표현하기를 금강석 끝 철필로 마음 판과 제단 뿔에 새겨졌다고 하였습니다.

 

금강석 끝 철필로 글을 새겨 넣는 대상은 돌이었습니다. 그렇게 새겨진 글이나 그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죄악이 그들의 심령의 비석에 철필로 아주 단단히 새겨졌습니다.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았고 요시야의 종교개혁이나 선지자들의 외침으로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죄악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이 새겨졌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는 마음 판을 넘어 제단 뿔에 새겨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단 뿔에 새겨졌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제단 뿔은 성전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 뿔이 아닙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들의 제단 뿔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들이 재물을 드렸던 우상의 제단입니다. 그 제단들에 그들의 죄악의 흔적이 남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신처럼 여기고 그것을 위하여 마음과 몸을 드렸던 흔적들이 우리가 추구했던 물질과 삶의 성공의 제단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유다가 우상을 숭배하고 그 우상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우상의 제단에 희생의 제물과 헌신의 제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듯이 우리들의 일상에도 재물, 성공, 명예, 쾌락 등을 얻기 원하여 우리가 만든 우상의 제단에 드렸던 희생의 제물과 헌신의 제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수단과 편법, 사기치고 도둑질하며 타인을 짓밟고 얻어낸 성공 뒤에 남아 있는 죄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이 사탄의 입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제단의 제물을 태우다가 그 불에 사름을 당했던 것처럼 그 죄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10).

이어서 하는 말이 그들의 자녀들의 죄 된 행위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녀들이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이 말은 그들의 자식들은 자기들이 어렸을 때 부모들이 데리고 갔던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기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평생 동안 우상들을 강하게 향하고 따를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어떻게 우상을 섬기는지에 대해 배우고 자신들도 따랐기에 그들의 우상에 대한 애정을 감소시키려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채찍에 의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죄악이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이름을 우상에게 내어 주고, 밧줄로 동이듯 자신을 우상에게 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믿음은 우리들의 믿음의 투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따른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본문에서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라고 한 것처럼 당연히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1,2절에서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신 하나님께 유다의 부모들 뿐 아니라 자녀들의 죄를 지적하신 이유는 그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우상을 숭배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심판만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심판에 대해 3절과 4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재산과 보물이 노략을 당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땅에서 원수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말씀 중에 주님은 네 손을 뗄 것이며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불의를 행하면서까지 움켜쥐었던 것들에서 손을 떼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에게 절하며 불의를 저질렀는데 그 결과물로부터 손을 떼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결과로 쌓은 것들은 반드시 무너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724절과 25절에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그 본문에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불법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무너지고 말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자들은 그것이 좀 느리고 힘이 들어도 흥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아는 데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믿음과 교회 밖에서의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아멘한 믿음이 삶 속에서도 그대도 실천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의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죄를 지적하시고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택을 바르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5절과 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원인은 본문의 말씀처럼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 힘을 삼는 자들은 다름 아닌 상한 갈대를 의지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으로 그 힘을 삼아 그것에 계속 집착하며 의지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332절에서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고 고백하며 기도한 것과 대조되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육신의 힘을 의지한 것과 함께하는 말이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마음이 여호와를 떠났다는 말입니다. 이 점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29:13)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겼지만 마음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육신의 탐욕을 채우는데 힘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증한 것은 저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전 힘을 다 쏟았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식을 폐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속된 말로 양다리를 걸친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따라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겼던 것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10이라면 우상과 세상에 대한 마음은 90이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본문은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고 인간을 의지하고 육신으로 그 힘을 삼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물통에 담긴 물만 바라보는 것은 그것을 길어온 샘을 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화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아는 자들이 인간을 신뢰하는 것은 스스로를 웅덩이에 던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6절의 말씀처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황폐한 땅의 산물인 애처로운 떨기나무처럼 기력이 없고 쓸모없으며 무가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소명 받을 때 등장했던 떨기나무가 아닙니다. 그 나무는 히브리어로 세네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의 떨기나무는 아르아르라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이스라엘에서 소돔의 사과로 불리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사해를 중심으로 요단 계곡의 아라바 광야를 따라서 자랍니다. 이 나무를 소돔의 사과라고 부르는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 함께 저주받은 나무라는 전승 때문입니다.

 

이 나무의 열매는 사과처럼 커다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먹음직스러운 그 열매를 따서 보면 열매 안이 텅 비어 있고 솜처럼 하얀 실들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열매는 허망함과 안타까움만을 안겨 줍니다. 뿐만 아니라 줄기에 상처를 내면 우유처럼 희고 끈적끈적한 독이 있는 진이 줄줄 흘러나옵니다. 워낙 독성이 강해 아프리카에서는 화살촉에 이 독을 바르거나 적군의 우물에 넣었다고 하며, 현대의학에서는 성병 치료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옻나무에 옻이 옮듯이 그 나무 주변에만 있어도 예민한 사람은 나무의 독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6절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의지하며 육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은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자신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들이 다 엎드러질 것이며 그는 기력이 없어지고 낙심하여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짓밟혀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좋은 일을 나누어 가질 수도 없게 됩니다.

시간은 바뀌어도 그들은 변함없으며 광야 간조한 곳에 거하게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추수하여 수확물을 거두어도 그에게는 아무런 소득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의 열매를 맺을 수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구원에 이르는 복된 열매를 거둘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자들에도 해를 끼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 힘을 삼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떠난 자들에 대해 다른 말로 심판을 말씀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9절부터 1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그래서 13절에서도 예레미야는 기도를 통해 이들이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이렇게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버린 자들이 받을 벌에 대해 말했다면 또 다른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7절과 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앞에서 계속해서 말했던 것들과 정반대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앞에서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 자와 대조 되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하며, 의뢰하는입니다. “의지하는 것의뢰하는 것이라는 히브리어 바타흐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타흐라는 말은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 확신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개념은 확고부동이나 견고함과 관련 있습니다. 어쨌든 히브리어에서 바타흐신뢰할 만한 것이나 사람이 있다는데서 오는 행복감과 안도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한다는 것은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여호와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에 대해 흔들리지 않으므로 행복감과 안도감을 얻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고 믿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힘을 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이 어깨는 펴고 걷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뒤에 부모가 있으며 개 앞에서도 걷지만 자신이 의지할 이가 없으면 강아지도 무서워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를 믿고 의지하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최후 서신에서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3)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며 언제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 질 때 뿐 아니라 누가 보아도 가장 불안정한 때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의 사랑을 의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주어지는 풍성한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물가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의무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의 힘의 근원으로 삼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우리의 힘으로 삼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아이가 자신의 힘의 근원으로 부모를 삼고 부모의 능력을 자신의 힘으로 삼아 무서운 개 앞에서도 지나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행하는 자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 같은 것입니다. 그는 가장 좋은 땅에 큰 배려로 심겨진 선택된 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그 뿌리를 물가에 뻗치는 나무와 같아서 요동치 않고 서있으며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그 뿌리를 뻗침으로 풍부한 수액을 빨아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소망으로 삼는 자들은 평안하게 되고 계속하여 안정과 마음의 평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은 그분은 변함이 없고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내적인 평강과 만족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수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샘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물동이가 깨질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란을 당해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풍이 불어도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는 넘어지지 않듯이 그 믿음의 뿌리를 여호와 하나님께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힘과 은혜를 얻는 자들은 결실이 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자들은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112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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