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벳 땅처럼 되리라

예레미야 191-15

 

예레미야는 18장에 이어 19장에서도 토기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8장에서는 토기장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씀하셨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19장에서는 토기의 상태를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1절과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에게 옹기를 하나 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옹기를 가지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토기장이의 집과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모두 예루살렘 서쪽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곳에 예레미야는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왜 어른들을 데리고 간 것일까요?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게 된 원인이 백성의 어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른으로서 어른 노릇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어른, 제사장의 어른은 이스라엘의 양대 지도자를 뜻합니다. 하나는 정치, 하나는 종교입니다. 이 두 그룹이 모두 타락했던 것입니다.

 

정치는 자신들의 이득만을 생각했고 종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 뒤에 숨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데 빨랐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길을 제시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어야 할 백성의 어른들이 어른의 노릇을 못했기 때문에 그 백성들이 소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레위기를 주시면서 제사장에 대한 엄격한 규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왜 제사장들이 엄격한 규례와 규율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유를 말씀하시기를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21:4)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주의를 주었던 어른들이 타락함으로 그를 보고 배우고 따랐던 백성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하시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매번 말씀 드리지만 이 시대 영적인 어른의 자리에 있는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사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주의 백성들은 백성의 어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존재입니다. 나 하나만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그 결과로 주신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자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세상은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 속한 세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생각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은 교회를 향해 독선적이라고 말하고 배타적이라고 말하며 대항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이렇게 받는 미움은 당연한 것이고 없다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했고 주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에 받는 욕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을 향한 거룩한 삶의 어른 역할은 이 시대 한국교회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는 한국교회에 작게는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예배 시간을 통해 우리를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두렵지만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와 우리의 주변에 변화가 일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절부터 5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하나님은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그 땅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재앙을 내린다고 말씀하시는 중에 강조한 말은 들으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원문에는 쉐마라는 말을 가장 앞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나름의 종교적 열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았다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 쉐마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쉐마경청하다, 순종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쉐마는 듣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3절에서 들으라고 한 말씀은 단지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 포함된 하나님의 답답함이 들리십니까? 쉼 없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도 전혀 행하지 않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시는 심정인 것입니다.

 

이렇게 들으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주신 신명기를 통해 강하게 말씀하셨었습니다. 신명기 64절부터 9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오랜 동안 들으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그들에게는 우이독경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재앙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맨 마지막 절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15)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부터 재앙을 내리시기까지 쉼 없이 들으라고 말씀하셨지만 듣지 않아 재앙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재앙을 선포하시고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읽었듯이 먼저는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4절과 5절을 보면 바알에게 분향하고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바알은 무엇일까요? 풍요입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당시 바알 신앙인들은 건기동안 지하에 있던 바알이 올라와야 비를 내리고 풍요를 준다고 믿었습니다. 요즘같이 비가 안 올 때는 바알 앞에서 온갖 음란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알과 아세라가 사랑을 해야 비가 온다고 믿었기에 그들을 흥분시켜야 했고 그것을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분향하고 산당을 지어 바쳤던 것은 바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알이 주는 풍요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는 돈입니다. 그 돈을 위해 명예를 팔고, 돈을 위해 영혼도 파는 세대입니다. 최고의 힘은 돈인 시대에 살기에 교회와 성도들도 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배와 신앙교육보다는 학원과 학업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해야 성공이라는 풍요를 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직과 정의가 옳다고 믿지만 선택의 순간에는 불의와 타협하고 불법을 스승으로 삼고 따르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흐르는 말씀과 기록된 말씀이 옳지만 삶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를 꽉 막히고 고리타분하다고 하고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자를 지혜롭고 열렸다고 말하는 이상한 세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성공이라는 풍요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세상 앞에 분향하고 불의의 산당을 높이 더 높이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을 전하는 저와 듣는 여러분 모두는 풍요의 신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 시대 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무죄한 자의 피로 예루살렘을 채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비롯한 기득권세력들이 주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었고 못 갚으면 그들을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들의 죄에 대해 호세아는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4:1-2)라고 하였으며

 

아모스는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2:6-8)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것들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죄한 자의 피로 채운 성을 미가는 피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훔은 니느웨를, 하박국은 바벨론을 피성이라고 정의하며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가서 34절에서는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주의 백성들에게 공의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미가서 31절은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라고 하셨고 아모스 524절은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공의롭게 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그들은 아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습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모압의 신이었던 머리는 숫염소고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 몰록에게 행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몰록신앙이 이스라엘로 유입되었습니다. 이 의식은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왕 재위 기간에도 행해졌고 기원전 7세기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때 행해졌으며 기원전 6세기 바빌론에 유배되기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왜 그들은 자신의 아들을 불로 태워 신에게 드렸을까요? 그것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함과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불에 태워죽일 만큼의 탐욕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주변을 희생시키고 심지어는 가족을 재물로 삼는 어리석은 짓을 일삼습니다. 가족을 재물로 삼는다는 것은 탐욕을 채우느라 가정이 무너지고 자녀가 병드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고 거짓으로 이웃과 갈등하고 자주 다투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렇게 살아서 먹고는 삽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이웃과 만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합니다. 얼굴에는 자신감도 기쁨도 없습니다. 이웃들과 건강한 웃음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숨어살 듯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가족들을 희생재물 삼은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들의 풀 같고 그 영광이 꽃 같은 짧은 생애 동안 탐욕에 눈이 어두워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그들의 죄를 지적하신 하나님은 백성과 제사장의 어른들을 부른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달리 부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절과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도벳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이후로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나 도벳이라고 불리지 않고 죽임의 골짜기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임의 골짜기가 된다는 말씀은 유다의 대적들이 몰려와 그들을 쳐서 죽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바벨론이 그들을 공격하여 처참하게 죽이고 그곳에 시체를 쌓아 새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왜 이 골짜기를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곳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아들을 불에 던져 넣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사역 초기에 왕이었던 요시야 왕이 몰렉에게 드리던 이방 제사를 파하고 골짜기와 도벳 산당 터를 더럽혀(왕하 23:10), 그때부터 이곳은 이방인의 무덤과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다 모아 큰 불을 피워서 태워 없앴고, 각종 오물을 버렸습니다. 특히 율법을 어겨서 죽임 당한 사람, 이방인, 반역자, 문둥병 등 부정한 질병으로 죽은 자, 그리고 오갈 데 없이 살다가 이름도 없이 죽은 거지나 유랑자들의 시체를 매장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힌놈의 골짜기 주변에서는 쓰레기와 짐승의 사체와 사람의 시체에서 나오는 심한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예루살렘 성의 쓰레기들과 오물들은 옛 성문 가운데 분문을 통해서 옮겨 힌놈의 골짜기로 실어 날랐는데, 온갖 더러운 것들과 오물들과 죄인들의 시체와 짐승의 사체가 나가는 문이어서 분문이라 이름 지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예루살렘성에 여러 개의 문이 있지만 유대인들은 오직 이 분문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이곳을 게헨나라고 물렀습니다. “골짜기라는 뜻이고 헨나힌놈의 헬라식 표기입니다. 그리고 이 게헨나는 지옥이라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가룟 유다가 목메어 죽은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장소로 쓰여 져 예레미야를 통해 책망을 받았던 장소는 결국 쓰레기와 시체가 태워지는 부정한 곳이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을 팔았기에 차라리 나지 않음이 좋았을 것이라고 했던 가룟 유다가 목을 매고 죽고 나무에서 떨어져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왔다고 한 장소가 된 곳이 이곳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판을 말씀하신 주님은 토기장이에게서 샀던 옹기를 통해 아주 강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10절부터 11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하나님은 함께 했던 자들 곧,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들 앞에서 옹기를 깨뜨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게 하신 것은 당시 사람들이 행했던 행위를 통해 말씀하심이었습니다. 고대 때부터 애굽 사람들은 반역자들의 이름을 토기에 쓰고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깨뜨려 그들의 멸망을 맹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 말씀하시는 도구로 쓰여 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토기를 깨뜨리심으로 이스라엘의 어른들에게 그들이 반역했음 알게 하고 그 결과로 깨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실제 행위를 통해서 만든 이의 뜻에 맞지 않으면 이처럼 멸망당하고 말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깨뜨리고 말씀하시기를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 깨진 그릇은 어떻게 해서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과 유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듣지 않았고 결국 바벨론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사람들 중 3분의 1은 질병으로 죽었고, 3분의 1은 칼에 죽었으며 3분의 1은 포로로 끌려가 죽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뒤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이 말씀을 듣고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의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외쳤던 예레미야는 외로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 감각은 무뎌져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고 자신들은 나름대로 성전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무너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외로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외로운 외침은 우리들이 외쳐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들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도벳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과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2절과 13절에 두 번씩이나 도벳 같에 할 것이라”, “도벳 땅처럼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도벳처럼 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게헨나”, 지옥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라기는 깨진 옹기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깨지면 완전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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