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기도했다고?
야곱을 생각하면 발뒤꿈치, 팥죽, 속임수, 축복, 품삯, 사닥다리, 씨름 등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장들 중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에 가장 험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애굽의 바로 앞에 섰을 때 고백하기를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험한 삶을 살았는데 그 중에 가장 험한 삶은 아버지의 축복을 속임수로 받고 죽이겠다는 형의 위협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 살았던 20년간의 노예 아닌 노예로서의 삶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에게 반해 그를 위해 14년간의 종살이를 하며 살았고 그 후에는 자신의 집을 세우기 위해 외삼촌 라반과 계약을 맺게 됩니다. 창세기 30장 32절과 33절에 계약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창30:32,33) 야곱이 이처럼 외삼촌과 계약한 후에 얼룩진 것과 점 있는 것은 모두 가려내어 외삼촌에게 주고 자신은 흰색 양과 염소만을 맡았습니다. 이제 야곱은 흰색 양과 염소들 속에서 얼룩진 것과 검은 것, 점 있는 것이 태어나야만 자신의 재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간절한 소망을 가졌던 야곱은 한 가지 행동을 합니다. 야곱은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개울가로 갔는데 이 때 야곱은 그곳에 세 가지 나무의 가지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것은 살구나무, 신풍나무, 버드나무의 가지들입니다. 그냥 세워놓은 것이 아니라 이 가지들의 껍질을 군데군데 벗겨 세워놓았고 가축들이 그곳에 와서 물을 먹으러 왔다가 그 앞에서 교미를 했습니다. 특히 건강한 가축들일 때 그 가지들을 세워 놓았고 그렇지 못하고 약한 가축일 때는 세워놓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얼룩진 것과 검은 것, 점 있는 건강한 가축이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행동한 것은 야곱이 주술을 행하거나 가축출산의 심리적 원인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제목처럼 야곱의 기도였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은 동식물 등에 의미를 부여해 두었습니다. 마찬 가지로 야곱이 꺾어다 세워놓은 세 가지 나무는 나름의 상징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버드나무입니다. 버드나무는 다산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풍나무는 플라타너스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껍질이 얼룩얼룩합니다. 마지막으로 살구나무입니다. 성경에서 살구나무는 아몬드나무인데 이 나무의 히브리어는 “샤케드”로 이는 “깨어있다, 지키다”는 의미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이 세 가지 나뭇가지를 꺾어 시냇가에 세워두면서 한 기도는 “주여 얼룩얼룩한 놈을 많이 꼭 주세요.”였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기도한 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야곱이 이런 해동을 했기에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야곱이 고백했는데 “그가 이르시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때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했고 하셨음에도 야곱은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원리에 대해 에스겔서 36장 37절은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라고 하여 주시겠다고 했지만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시냇가에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그 장소가 은혜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물은 은혜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 강, 시내, 비, 이슬, 샘, 우물 등입니다. 그래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물이나 강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우물가에서, 야곱도 라헬을 우물가에서, 모세도 십보라는 우물가에서, 심지어 예수님도 사마리아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났습니다. 또한 선지자들은 강가에서 기도했습니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다니엘은 을래 강변에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 강가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와 반대의 개념은 ‘웅덩이’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수고를 상징했는데 예레미야는 이것은 터진 웅덩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수고는 헛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강가에서 가서 기도할 이유는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생수의 근원되시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 응답하시겠다던 약속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